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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예산서 깍인 「복지」(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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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예산서 깍인 「복지」(사설)

입력
1990.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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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창예산을 짜면서 사회복지 예산은 사정없이 깍아내렸다. 사회간접 자본의 투자확대를 통해 성장의 기반을 굳히고 넓힌다는 게 팽창예산편성의 이유라고 정부는 애써 밝히고 있다. 그렇다면 성장은 누구를,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부의 복지관은 무엇인가. 성장만 하면 복지는 저절로 실현되다는 것인가. 아니면 성장을 위해 복지는 희생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인가. 이런 의문이 제기된다.우리네 복지구조는 그렇지 않아도 취약하다. 성장의 그늘 아래 여러 소외계층이 있다. 구제의 손이 미쳐야 하는 절대빈곤의 계층이 있고 최저생계비에 미달하는 저소득층,소년ㆍ소년가장,노인,장애자들이 시름과 고통을 벗어나지 못하고 어려운 나날을 보낸다. 이들이 전체인구의 15%나 되는 어두운 현실이다.

강력한 복지정책의 혜택이 없는 한 이계층에겐 생활고가 가중될 뿐이다. 계층간의 갈등과 불균형이 이 사회의 가장 아픈 취약성임은 드러난지 오래다. 그래서 개혁의 요구가 세차며 복지에 대한 갈망이 높아 가고 있음이 아닌가.

보사부는 복지에 쓸 내년도 예산규모를 올해보다 82% 늘린 2조원선으로 잡아 경제기획원 심의에 넘겼으나,겨우 17%만 증액시키고 크게 삭감당하고 말았다. 팽창예산을 생각하면 복지투자는 어림잡아 금년 수준보다 나아진 게 없을 정도이다. 이만한 복지예산은 국민총생산(GNP)의 0.97%에 지나지 않는다.

선진국의 14%,중진국의 7%와 비교하면 어림도 없는 한심한 수준임을 금방 알 수 있다. 복지에선 어김없는 후진국이다. 이러고도 복지국가를 지향한다면 그것은 멀쩡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정부는 복지에 대한 종래의 발상과 구상을 교정하고 대전환을 꾀하는 의지을 확고하게 보여야 한다. 쓰고 남아야 올리는 게 복지예산이 아니다. 「파이」를 더 늘리지 않고 갈라 먹자는 게 복지라고 생각하면 큰 잘못이다. 복지가 없는 성장은 오히려 불안하게 마련이다.

우리 사회에 드리운 그늘을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직시할 만한 용기가 지금 아주 필요하다. 소년ㆍ소녀가장은 줄기는커녕 늘어간다. 아파도 치료 받을 병상이 크게 모자란다. 저소득층은 어디에 희망을 걸지 막막한 상태다. 노인들은 방황하며 심한 소외감에 시달린다. 일거리를 갈망하고 노인전용 임대아파트라도 있었으면 하는 게 당장의 소박한 소원이다. 이 현실에 눈을 내려 깔고 우선 순위를 뒤로 미룬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하나 지적해 둘 것은 예산편성 당국의 경직성이다. 힘센 부처의 입김에 휘둘리는 듯한 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지 않나 의심스럽다. 복지는 물론 문화ㆍ교육예산을 너무 만만하게 보는 경향은 벗어나기 어려운 모양이다.

예산은 정부 부처간의 숫자놀음이 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의 요구들을 고루 내다보는 자세로 짜여져야 한다.

성장의 노력도 어렵지만 성장일변도에 따른 역작용의 고통이 얼마나 큰가를 우리는 체험을 통해 깨달은 바 있다. 기관차만 내달리고 객차가 따라가지 못하는 과오는 더 반복해선 안될 것이다. 긴축예산이라 하여도 복지투자는 늘려야 하는 추세다. 하물며 팽창속에서 복지를 냉대하는 정책은 받아들일 수 없음을 밝혀둔다. 사회의 그늘이 좁아져야 안정과 희망이 싹트고 자리를 제대로 잡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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