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동생등 가족6명과 눈물 해후/“울고만 싶다” “오래 사세요” 글썽『울고싶어. 울고싶은 생각뿐이야』
45년만에 네 동생과 매부 조카 등 여섯가족을 재회한 북한의 원로사학자 김석형씨(75ㆍ북한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고문)는 손수건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 내며 한손으로는 언제까지나 놓지 않으려는 듯 여동생 김석수씨(61ㆍ서울)의 손을 꽉 움켜쥐었다.
3일 하오5시30분 제3차 조선학국제학술토론회 역사분과회의가 열린 오사카(대판) 국제컴퓨터전문학교 9층 회의실에서 김씨는 한국과 미국에서 달려온 혈육과 친척들을 만나 나머지 혈육들의 안부를 캐물으며 45년동안 깊숙이 감추어 두었던 눈물을 쏟았다.
김씨와 만난사람은 남동생 석창씨(69ㆍ과천교회장로) 여동생 석수 석순(64ㆍ뉴욕거주) 성은씨(59ㆍ부산) 등 네동생과 매부 최명관씨(65ㆍ숭실대 대학원장ㆍ석수씨남편) 조카 최선혜씨(40ㆍ서울대강사ㆍ최씨딸) 등 6명.
막내여동생 성은씨가 『오빠 오래 살아야해요. 그래야 또 만나지』하고 말하자 『그래 그래』하며 손을 끌어다 잡았으며,올케의 안부를 묻자 『10년전에 죽었어』하고 대답했다. 또 의주에 살던 누님 석희씨의 안부를 묻는 동생들의 질문에 『53년도에 죽었다』면서 또한번 눈물을 흘렸고,남쪽형들의 안부를 물었다.
월북한 경위를 묻는 보도진의 질문에 김씨는 『46년8월 김일성대학이 설립돼 같이 일하자는 초청이 와 역사학자 박시형 언어학자 김수경과 셋이서 월북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날 상오11시30분 행사장에서 가족들과 비공식적으로 잠깐 만났었다. 행사개막 전체회의장인 오사카국제교류센터 대회의장으로 가족들이 찾아갔었다.
남북형제자매의 극적인 재회는 학술대회개막식이 끝난 직후에 이루어져 남북 남북학자들과 세계 각국에서온 3백여명의 한국학 학자들이 지켜보고 보도진의 열띤 취재경쟁이 벌어졌다.
대구출신인 김씨는 북한에서는 물론,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고고학자여서 이번 학술대회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경성제대 문학부를 나와 경성대학 교수로 재직중 월북한 김씨는 김일성대학 역사학부장과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장을 지냈으며,79년부터는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일제때부터 좌익사상에 깊이 빠져있던 김씨는 김일성대학의 초청을 받고 『내 학문을 알아주는데 가서 일하겠다』며 자진 월북했다. 당시 경성대학의 교수월급은 운동화 한켤레 값도 채 못되는 정도였는데 북에서 트럭까지 보내오자 부인과 남매를 데리고 선선히 따라갔다고 가족들은 말했다.
김씨의 아버지 김선균씨(46년작고)는 일제시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고등고시에 합격,첫 한국인 판사가 됐으며,후에 변호사생활을 하다 해방직후 초대 경북지사를 지냈다.<오사카(대판)=문창재특파원>오사카(대판)=문창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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