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직까진 「동시 타결」에 신중/우리측 제공 「경협규모」가 변수/체제 차이 부담… 경제팀은 더 머물러 투자환경 탐색2일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한소 수교회담은 무엇보다 양국정부간 첫 공식회담이라는 데서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이후 양국 수교에 관한 원칙적 합의가 처음으로 가시화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이 회담은 그 자체로서 탐색전 이상의 상징성을 지닌다. 즉 시작이 반이다」라는 격언과 같이 수교를 향한 양국간 논의는 이번 회담으로 본궤도에 들어섰으며 수교시기는 오히려 지엽적인 문제로 남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한소 간에는 더이상 북한의 존재가 양국관계 정상화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으며 단지 경제분야 등 상호 협력증진의 문제만이 논의의 핵심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회담에서 한소 양측이 경제협력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리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소련측이 당초 우리측에 요청한 정부대표단의 성격이 「경제대표단」이었고 실제로 우리측에서 임명한 대표단의 구성도 경제분야에 비중이 실려있다. 양측 대표단의 단장도 경제전문가이며 그간 우리측이 많은 준비를 해온 분야도 경제협력 부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우리측의 경제뿐 아니라 수교 등 정치부문의 논의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대표단에 정무관계자들을 포함시키는 등 나름대로의 의사표시는 하고 있으나 이번 회담에서 정치분야가 종속변수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못한다.
이처럼 경제분야 논의의 중요성을 똑같이 인정함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에 임하는 한소 양국의 입장은 약간 다르다.
소련측이 「양의 변화가 질의 변화를 낳는다」는 변증법적 논리를 내세운다면 우리측은 「수교와 경협의 바퀴가 동시에 굴러야 한다」는 중용의 논리를 주장하고 있다.
소련측은 한소 양국이 관계정상화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수교에 장애는 없다고 밝히고 있다. 북한은 이미 고려의 대상이 아니라는 게 소련측의 입장이다. 다만 한소 수교를 이루기까지는 양국관계의 양적인 발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양」이란 경제협력을 의미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반해 우리측은 경협 등 양국관계의 증진을 위해선 이를 보장할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투자보장 협정 이중과세 방지협정 등 각종 제도적 장치의 마련이 요청되며 이들 협정의 체결은 수교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고있다.
양국의 입장이 다소 다르지만 근본적인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 아니다. 양국은 이번 회담에서 이러한 입장차이의 절충점을 찾으려 할 것이고 이는 경협을 약속한 상태의 제도적 장치마련 또는 수교의 방식으로 타결될 가능성이 크다. 즉 경협규모를 확정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수교 또는 수교를 전제로 한 협정체결 등을 합의하는 수준을 거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회담의 핵심은 우리측이 제공할 수 있는 경협의 규모로 압축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측은 경협규모에 대한 복안을 이미 확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결정되는 액수는 회담의 진척에 따라 신축성을 보이겠지만 최소 20억달러에서 최대 50억달러의 규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우리측은 소련에 대해 차관 등 직접적인 방식보다는 소비재수출및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불보증,공동투자 등의 간접적인 형태의 경협을 생각하고 있다. 이는 소련이 강대국이라는 심정적 배려뿐 아니라 우리측의 부담능력및 국민감정,상응하는 경제이익 등의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우리측이 소련과의 교역이나 투자로 인해 어느 정도의 경제적 반대급부를 얻을 수 있는가는 이번 회담에서 중요하게 고려될 사항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현단계에서 양국간 경협문제가 어느 선에서 합의점을 찾을지는 알 수 없다.
소련측은 아직 우리측에 경협규모를 직접 제시한 바 없으며 이번 회담에서도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경제체제 자체의 차이는 우리측에 부담스런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러한 협상의 복잡성때문에 우리측은 5일 귀국하는 정부팀과는 별도로 경제팀만 잔류,재무성 대외무역성 산업부 중앙은행 등 소련의 고위관계자들과 만나 경협에 필요한 제반사항과 소련측의 입장을 타진할 계획이다.
이와관련,대표단장인 김종인청와대 경제수석은 31일 출국전 김포공항에서 『소련과 우리와는 경제운용방식이 크게 다르기 때문에 소련경제관계자들과 폭넓게 접촉해 경협환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따라서 이번 회담은 구체적인 합의사항 도출보다는 탐색전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회담은 전체회의와 정무ㆍ경제의 분야별 회의로 나뉘어 진행된다. 정무회의에서는 상대적으로 경제분야보다는 낮은 농도의 얘기가 오가게 될 것이지만 우리측이 깊은 관심을 표명하고 있는 만큼 동북아정세,남북 관계개선,한국의 유엔가입 등에 있어서의 소련의 역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표단과 비슷한 시기에 소련을 방문하게 되는 박철언 전 정무장관이 막후에서 모종의 역할을 해낼 경우 이번 첫 공식회담은 정치분야에서도 「상견레」 이상의 상승효과를 낳게될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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