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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시대/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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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칭시대/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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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업무를 다루는 문교부에는 대학의 학원상황을 항상 「주시」하는 묘한 부서가 있다.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시시각각 파악하고 새로 나온 유인물을 통해 이념 동향을 분석하는 곳이다.수년전 문교부에 출입할때 이 부서의 간부방에 찾아가 한담을 나누다가 책상 유리밑에 끼여 있는 이상한 쪽지를 발견했다. 거기에는 「삼민투=민족통일ㆍ민주쟁취ㆍ민중해방투쟁위원회」,「자민투=반미자주화ㆍ반파쇼민주화투쟁위원회」「민민투=반제반파쇼 민족민주투쟁위원회」 등의 풀이가 깨알같이 타이프돼 있었다.

『이게 뭐냐』고 묻자 그 간부는 멋쩍은 웃음을 띤채 『하도 복잡해 만들어 본 것』이라고 어물어물 설명하더니 양복 윗주머니에도 똑같은 쪽지를 넣고 다닌다며 꺼내 보였다. 윗사람이 『자민투가 뭐지』하고 물으면 재빨리 대답할 수 있도록 외고 다니는 것이었다.

그는 『운동권 아이들이 쓰는 말에는 참 희한한 것이 많다』는 말도 했다. 신세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처지에서 수없이 새로 생겨나는 운동권단체,신조어나 다름없는 생소한 용어와 씨름해야하는 고충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매일 그 업무를 다루는 사람이 그럴 정도이니 일반인들은 오죽하랴. 일반국민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단체의 약칭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운동권의 논리가 치열해지고 투쟁의 방향성이 다양해지면서 자연히 단체의 명칭도 길어져 약칭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은 오래전의 일이다. 그래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조국의 평화와 자주적 통일을 위한 학생추진위원회 건설준비위원회」라는 숨가쁜 이름은 「전대협학추위건준위」라고 줄어들게 된다.

「철농」(철야농성) 「점농」(점거농성)이라는 식의 약어를 흔히 쓰는 운동권의 언어는 「선비족」(시위에 가담하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미추위」(미팅추진위원회) 「시추위」(시험대책추진위원회) 「학쟁투」(학점쟁취투쟁위원회)라는 말을 일상적으로 쓰게 만들었다. 정치권이나 노동계 등에서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약칭과 약어 등이 수없이 쓰이고 있다.

이런 약칭이나 약어는 긴 이름으로 인한 불편을 덜기 위한 것이지만 너무 남용하다 보면 원어는 실종되고 지향하는 바 본래의 의미가 매몰돼 버린다. 또 동일집단 내부의 결집력은 높여질지 몰라도 외부와의 차단막 구실을 함으로써 배타성을 높이고 언어의 파괴와 해체라는 부작용도 빚게 된다. 간편해지자는 뜻에서 사용되는 약칭과 약어가 오히려 혼란과 불편을 주는 사례도 많다. 이름이 비슷할 경우에는 그런 혼란이 더욱 커지게 된다.

「가제약어사전」이라도 나왔으면 좋겠다.

7월26일자에 실린 「함께사는 사회」를 읽고 심희영씨(서울 서대문구 북가좌동 한양아파트 2동 605호)가 20만원을 성금으로 보내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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