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사회주의 콤플렉스(조두흠칼럼)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사회주의 콤플렉스(조두흠칼럼)

입력
1990.07.31 00:00
0 0

2차대전 후 일본사회에 사회주의 콤플렉스가 만연된 시대가 있었다. 알기쉽게 말해서 사회주의국가가 하는 일은 옳고 자본주의국가가 하는 짓은 그르다는 생각이다.일본 지식인들이 가진 사회주의 콤플렉스는 마치 미지의 처녀성에 대한 동경과도 비슷했던 것 같다. 그 동경의 대상이 한때는 소련이 되었다가 나중에는 중국이 되고 마지막까지 남은 대상국은 북한이었다.

소련군에 의한 체코침공,동독ㆍ헝가리 국민의 봉기에 대한 무차별진압사건이 일어나도 일본지식인들은 그렇게 호된 비판을 가하지 않았다. 북경정권에 대한 1단짜리 비판기사를 쓰고 특파원이 추방당해도 일본 신문들은 단합해서 항의하려 들지 않고 자사특파원만 남게 하려고 갖은 아양을 떨기도 했다.

북송교포나 북송교포의 일본인 처가 기막힌 사연을 비밀리에 편지로 알려와도 묵살하고 김정일의 세습이 진행되어 가는데도 이를 외면한 채 비판하는 논설을 쓰지도 않았다.

반면 미국의 월남전 개입에 대해서는 그토록 비판적이었고 북폭은 비인도적 만행으로까지 표현되었다.

1975년 4월 사이공이 월맹군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일본 신문들은 이를 점령이라고 하지 않고 「해방」이라고 보도했으니 그간의 편향보도를 알만 하다.

하나 일본지식인ㆍ대학생들의 사회주의 콤플렉스는 70년 후반에 들어 서서히 불식되어 간다. 소련경제의 침체상,국민생활의 저수준,중국 공산당원ㆍ관료들의 부패상도 차츰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게 된다. 북한의 호전성도 처음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게끔 된다.

일본의 사회주의 콤플렉스는 패전후 혼란기에 기승을 부린 좌익사상의 팽배와 전승국 미국에 대한 반감이 엇갈려 양성된 것이지만 일본이 경제성장을 이루고 「경제대국」이 되면서 차츰 해소되어 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사회에 아직도 일종의 사회주의 콤플렉스에서 탈피를 못한 젊은이 장년들이 적지 않은 것은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르바초프가 5년전 소련사회의 오랜 고질과 병폐를 척결하기 위해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를 표방했을 때만 해도 보다 나은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것이라는 이상한 논리가 횡행되기도 했다.

소련경제와 국민생활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서방의 자본기술도입이 불가피하다는 사실은 선진각국에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데도 말이다.

중국이 낙후된 경제를 끌어올리기 위해 개방정책을 채택했다가 급격한 정치적 변동을 요구하는 대학생시위로 천안문학살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그렇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오랜 군사독재가 지겨운 나머지 사회주의 국가의 잘못은 대안의 화재라는 건가.

또 우리사회에서는 통일을 하자는 구호만 요란하고 북한의 실상에 대한 차분한 연구,대비책이 없어 걱정이다. 극언하면 남북한간에 선전용 스피커만 존재하고 있고 진정한 대화를 위한 전화수화기가 없다는 비유마저 있지 않은가.

전민련대표가 북한이 제창한 범민족대회 참가를 위해 예비회담만 가지면 통일의 전기가 올 것처럼 들뜬 것도 너무 순진한 생각이 아닌가 싶다.

정부의 대응책은 일관성이 없어 한마디로 갈팡질팡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북한의 실력을 과대평가한 것도 사회주의 콤플렉스의 한 증상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71년까지만 해도 북한의 국력은 한국을 앞서 있었다는 통계자료가 있다. 하나 그해를 고비로 한국의 국력이 반전하고 80년대 고도성장으로 지금은 엄청난 국력의 차이가 나 있다.

최근 방영된 모TV의 「남북의 창」백뮤직에 『높이 들어라 ×× 깃발을… 』이라는 공산당 노래가 흘러나와도 우리국민 가운데 별로 놀란 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이만큼 우리역량에 자신을 갖게 된 탓인지 모른다. 세상은 참으로 많이 변하고 있다.

이제 구호만의 통일논의,감상적인 통일열망도 지양할 때가 온 것 같다. 북한대표를 만나기만 하면 통일이 성큼 다가오리라고 기대하는 것도 너무 순박한 발상이다.

지금 개방에 대한 압력이 국내외적으로 북한에 가해지고 있지 않은가. 북한이 21세기까지는 완전히 개방될 수 밖에 없다는 낙관론자들도 있다.

서독이 통독을 하기까지는 오랜 인내와 경제원조가 밑바닥에 깔려 있었고 동독에 대한 민족 동질성 유지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해온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콜 수상이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만나 통일독일의 나토잔류를 인정받는 대가로 50억마르크의 대소경제원조를 약속하지 않았던가.

우리사회에서 통일논의를 보다 활성화시키고 실질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이제 국가보안법은 폐지되어야 할 줄 믿는다. 현행 국가보안법은 그 규정의 불명확성과 모호성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에 위배된다는 논의가 이미 수없이 되풀이 되어 왔다. 국가보안법을 그대로 두면서 반국가단체로의 잠입,탈출,찬양고무죄 위반여부를 수사기관의 자의적 해석에 맡겨둘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국가보안법 폐지후 북한공산정권에 의해 예상되는 각종 민주적 기본질서 파괴행위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대체입법이 필요한 것이다.

헌법에 내란죄,간첩죄,범죄단체 조직죄가 있고 군사기밀보호법도 있으나 이 조항만으로 민주적 기본질서를 수호하기에 불충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한변호사협회가 지난해 2월 내놓은 가칭 「민주기본질서 수호법」의 입법방향은 충분히 음미해 볼 가치가 있다. 우리국민ㆍ정부도 사회주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때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논설고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