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초월 정치적 결단/일,북방 4도 반환 큰 기대/69년엔 무력충돌… 고 집권 이후 양보시사60년대 중소 국경분쟁의 주무대였던 우수리강의 진보도(다만스키도)가 소련측의 양보로 이미 중국측에 이양된 사실이 밝혀졌다.
마이니치(매일)신문에 의하면 이같은 사실은 소련 중국 일본 당국자에 의해 확인됐는데,중국측은 88년부터 이 섬에 중국인민해방군부대를 주둔시켜 농업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소련측이 역사적인 경위나 국제법상의 다툼을 초월해 정치적 결단으로 중국과의 국경분쟁의 상징으로 지칭돼 온 이 섬을 중국에 넘겨준 사실을 주목,북방4개도서 반환 교섭에 기대를 걸고 있다.
소련과 중국의 국경선인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에는 대소 6백여개의 섬이 있어 옛날부터 국경분쟁이 잦았던 곳. 특히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양국관계가 악화됐던 60년대에는 분쟁이 더욱 첨예화돼 69년 진보도에서 양국군대가 충돌하는 사건까지 발생,이 섬의 귀속문제는 두나라 관계개선의 최대 장애로 등장했었다.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집권 이후. 고르바초프는 유명한 86년의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에서 『주요항로를 국경선으로 하자』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아 소련측이 대폭 양보할 의사를 천명한 것. 「주요항로」란 강의 중앙선을 국경으로 한다는 원칙보다는 융통성 있는 것이어서 진보도를 중국에 넘겨주겠다는 의미나 마찬가지였다.
라리디보스토크 연설이후 87년 2월 두나라 사이에 9년만의 국경교섭이 재개돼 88년 3월 제3차 교섭에서는 우수리강과 아무르강의 합류지역 흑할자도(우수리섬)를 제외한 동부국경지대의 분쟁이 대부분 해소돼 진보도는 중국측에 넘어갔다.
두나라 국경은 1850년 제정러시아와 청왕조간의 애흔조약으로 아무르강을,1860년의 북경조약으로 우수리강을 국경으로 결정,현재에 이르고 있다. 국제법으로는 강을 국경선으로 할 경우 중앙선을 경계로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그러나 여름철 장마가 끝나면 강의 흐름이 바뀌어 중앙선이 어느 지점인지 분간할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다,6백여개나 되는 섬이 강의 어느쪽에 있는지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 영토분쟁은 끊임없이 일어났었다.
특히 진보도는 강의 한가운데 자리잡은 약 1㎢크기의 섬이어서 더욱 문제가 복잡했다. 어느 쪽에서 보아도 자기네 영토라고 주장할 수 있는 위치여서 작은섬을 동서로 분할 할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소련측은 역사적인 경위를 내세워 이섬이 소련령임을 주장했고,중국측은 애흔조약과 북경조약이 제정러시아의 강압으로 맺어진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응수하면서 자국령임을 역설했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중앙선을 따질 것 없이 항로를 경계로 하자는 안을 내놓아 강의 주수로 서쪽에 있는 이 섬의 영유권은 중국측에 넘어갔다.
두나라간의 국경교섭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진보도문제는 아직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는 없다.
그러나 중국 외교소식통은 『진보도는 틀림없이 중국령이 되었다』고 확인했으며,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지난 27일 방소중인 사쿠라우치(앵내의웅) 일본 중의원의장과의 회담때 『중국과의 국경문제는 90%정도 합의했다』고 말해 이 섬의 중국양도 사실을 시사한 바 있다.
마이니치신문에 의하면 현재 중국군이 주둔하고 있는 이 섬에서는 농업개발사업이 한창이고,양국 어민들이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고기잡이도 하고 있으며 국경무역도 번창하고 있다는 것.
일본은 중소간 영토분쟁이 소련의 정치적 결단으로 해결된 사실에 주목,현재 소련과의 최대 현안문제로 부각된 북방 4개도서 반환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지난 25일 사쿠라우치 중의원의장에게 『일본이 영토문제만을 고집한다면 내년 봄의 방일을 재고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가 곧 방일의사를 분명히 한 사실에 일본 정부는 크게 고무돼 있다.
또 야코블레프 대통령위원회 위원이 지난 26일 북방영토문제에 대해 『역사를 정당화하거나 비판해 보아도 별 의미가 없다』고 발언한 것을 정치적 결단 가능성의 시사로 보고 있다. 이같은 일련의 반응들을 근거로 일본 외무성의 한 소식통은 『고르바초프 정권이 진보도문제처럼 북방도서문제에서도 중대한 정치적 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다』고 기대에 찬 발언을 했다.〈동경=문창재특파원〉
◎◇소국경분쟁 일지
▲1960=중소이념분쟁으로 국경긴장고조.
▲1962=중국내 소수민족 카자흐인,위구르인 소련으로 월경.
▲1963=소,중국이 62년 한해동안 5천건 국경도발주장,양국국 경에 정규군 배치.
▲1964=모스크바서 국경회담개최 결렬.
▲1966=중국 외무장관 진의,소가 1백50만㎦ 중국영토점령 주 장.
▲1969ㆍ3=우수리강 진보도(다만스키)서 두차례 국경충돌.
▲1969ㆍ10=중소 외무차관간 국경회담개최 난항.
▲1974=중국,소에 불가침조약제의(소도 이전에 수차례 제의).
▲1978ㆍ6=국경회담재개 결렬.
▲1986=소 아무르강 도서양보시사.
▲1987ㆍ8ㆍ21=중소국경 「아무르우수리」선 합의.
▲1988ㆍ10ㆍ31=진보도 일대동부 국경선 합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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