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정치상황을 어떻게 보느냐는 각자의 이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가에는 대체로 견해가 일치하는 것 같다. 한마디로 매우 저수준이라는 것이다. 정치의 국외자들만 이런 생각을 하는 줄 알았더니 정치권안의 시각도 비슷하다는 것을 확인했다.27일 제주도의 한 세미나에 참석한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은 「저질정치를 끝낼 수 없느냐」는 참석자들의 질문에 부끄럽지만 저질 정치인이 있는게 사실이라며 다음 선거에서 국민들이 걸러줘야 할 것이라고 되려 국민에게 당부했다. 우리 정치의 저질성에 정치인 스스로가 동의해준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문제가 어디 있는가를 알면 그 발본이 그만큼 손쉽기 때문이다.
우리 정치의 저질성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다. 멀리 갈 것 없이 13대 국회에 들어와서 만도 수뢰사건이다,상가분양이권이다,주먹질에 멱살잡이까지 등장하더니 끝내 야당의원 총사퇴는 절정의 사태까지 빚고 말았다.
우리가 정치의 이런 모습을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엄청난 영향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만성적 불안은 이런 나아지지 못하는 정치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치의 첫째 목적이 국태민안에 있을진데 온 나라가 시끄럽고 뒤숭숭한 사태를 지켜보면서 우리는 50년대말 한 외국기자가 우리의 민주역량을 비꽈서 말했던 「쓰레기 통에서 장미꽃은 피지 않는다」는 혹평을 되새기면서 과연 우리는 민주주의를 할 자격이 아직 없는가를 자문해보게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문맹률 1%,GNP 5천달러에 10대 무역국으로 부상했으며 88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국민역량으로 보아 민주주의를 만개시킬 저력이 있다고 믿는다.
물론,민주주의가 완벽한 정치체제도 아니며 또 쉽사리 꽃피울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잘안다. 그러나 그동안 자유와 평화로운 민주사회의 발전을 그리며 타는 목마름으로 참고,견디어낸 보통사람들은 오늘의 이 바닥을 헤매는 정국을 바라보면서 분노와 허탈감을 가눌 수가 없다.
이런 견지에서 민주주의 꽃을 활짝 피우려면 무엇보다 비민주적 토양부터 제거해야겠다.
이권청탁에나 쫓아다니는 정상배와 한입으로 두말을 거리낌없이 하는 위선적인 정치인이 정치풍토속에서는 민주주의라는 나무는 자랄 수가 없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웅장한 국회의사당이 생산적인 대화의 정치장소가 아니라 30초만에 26건의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키는 「통법부」로 전락되거나 소수야당의 폭력장으로 변했을 때 민주정치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것을 여야정치인은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이 오늘의 난국과 위기를 진정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고,안이하게 대처할 때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경고해 둔다.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그 세미나에서 저질정치인은 다음 선거에서 걸러내 달라고 했다는데 천번만번 맞는 말씀이다. 그러나 국민은 다음 선거까지 기다려줄 여력이 없다는 것도 아울러 깨달아야 한다. 3당통합으로 큰 정치와 새 사고를 내세웠던 민자당이 신뢰받는 정치와 염치를 아는 정치풍토조성에 앞장서야 할 것이며 야당도 당리가 아닌 국민의 이익의 입장에서 정치를 해나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리고 국민들은 선거때만을 기다릴 것이 아니라 우리정치ㆍ정치인의 고발과 질책에 좀더 과감하고 철저해야겠다. 그래야 우리 정치의 「저질」을 추방할 수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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