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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16세소년 42년만에 귀국/소련 수리학권위 장학수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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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북 16세소년 42년만에 귀국/소련 수리학권위 장학수박사

입력
1990.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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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투사후손… 좌익심취 「경복중」때 북으로/61년 소망명 “영구귀국 고국서 일하고 싶다”16세때 정의로운 사회를 동경하다 좌익사상에 물들어 단신 월북했던 독립투사의 후손이 58세의 나이가 되어 불우한 시대를 살아야 했던 기구한 사상편력을 증언하기 위해 귀국했다.

27일 하오1시10분 아에로플로트 599편기로 소련에서 귀국한 장학수박사(58)는 소련 수리학측정분야의 권위자인 과학자이지만 사상편력이 더 관심을 끄는 인물. 장씨는 공항에서 『자서전 「붉은별 아래 청춘을 묻고」의 출판을 문학사상사와 협의하기 위해 왔다』며 『영구귀국,고국에서 일할수 있는가 여부도 타진하고 싶다』고 귀국 목적을 밝혔다.

공항에는 둘째형 낙수씨(77) 부부 및 생질인 고려대 김병호교수 등 10여명이 나와 감격적으로 해후했다.

장씨가 「문학사상」에 연재하기로 한 「붉은별 아래… 」는 북한에서의 정치환멸,소련에서의 경험,이데올로기의 허구성 등을 담담하게 소개하는 내용으로 타이프용지 1천4백장 분량이다.

장씨는 32년 서울 종로2가 85에서 독립투사 장석철씨(전 보성고교감)의 5남4녀중 5남으로 태어났다.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자라나던 막내는 16세때인 48년 경복중에 다니던중 좌익사상의 유혹을 못이겨 단신월북했다. 45년에 단신월북한 세째형 춘수씨의 영향때문이었다. 춘수씨는 2년뒤인 50년에 남쪽으로 다시 넘어오려다 총살당하고 말았다.

장씨는 월북하자마자 무선조종 모형선시범을 보여 「과학천재」로 유명해 졌고 휴전회담 북한대표였던 남일의 주선으로 무선조종어뢰를 연구하게 됐다. 연구결과는 실패였으나 재능을 인정한 남일의 도움으로 소련 유학생이 된 장씨는 50년 모스크바 전기통신대학 무선공학부에 입학,56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북한에 돌아간 뒤에는 체신성중앙연구소 연구사겸 평양공대 강사로 평양중앙방송국 현대화계획추진 등에 참여했다.

그러나 5년후 흐루시초프가 스탈린 독재를 비판하자 김일성은 장씨를 앞세워 소련체제비판 등 악선전을 요구했다.

고민하던 장씨는 소련파에 대한 대대적 숙청이 벌어지자 61년 8월20일 상오2시께 두만강을 헤엄쳐 소련으로 망명했다.

소련에서는 9년간 트럭공장기사로 일하다 하리코브공과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66년 이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소련에서 현재 「인간생활주위환경보전을 위한 화학연구 및 합동체」 연구소의 화학담당부총장으로 근무하는 장씨는 지난해까지는 소련국가수문 화학연구소에서 일해왔다.

가족은 동갑내기 소련인인 부인 장니나씨(58)와 모스크바 석유화학대 부교수인 장남 등 3형제.

장씨는 지금 어떤체제가 옳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따라 많이 일하면 대가를 받을 수 있고 완전한 생산ㆍ사회활동이 보장되는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말했다.

8ㆍ15범민족대회 소식도 잘 알고 있는 장씨는 『북한은 절대로 자신들의 실상을 보여줄수 없는 곳』이라며 김일성의 교류제의가 허구라고 단언했다.<송대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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