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행은 거부 명분찾기 뿐/“인적 교류 아직 외면” 다시 입증/남북 접촉관련 정부ㆍ재야 「제한된 화음」은 뜻밖 성과26일 범민족대회를 위한 2차 예비회담의 서울개최가 회담장소및 안내문제에 대한 북측의 돌연한 태도변화로 성사직전에서 끝내 무산됐다.
이날 상오 전금철 조평통부위원장등 5명의 북측 대표단이 일단 판문점에 도착,서울 예비회담 개최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북측은 6차례에 걸친 양측간 연락관 접촉을 통해 「전민련으로의 창구단일화」를 고집,정부배제를 또다시 구실로 들고 나옴으로써 사실상 회담무산을 초래시키고 말았다.
북측이 이날 판문점 통과의 전제조건으로 내건 내용은 「전민련의 안내에만 따르겠다」는 대목이다.
남북 양측은 이날 상오 7시30분 쌍방 2명씩의 연락관을 내세워 판문점 통과와 서울체류의 절차문제를 논의,▲북측 참가자의 숙소와 회담장은 인터콘티넨탈호텔로 하고 ▲북측은 우리측 정부가 제공한 차량을 이용하며 우리측 안내관 1명이 동승하고 ▲남북 직통전화선 설치와 판문점을 통한 행낭운반보장등 8개항에 합의했으나 2차 연락관회의서부터 북측은 돌연 입장을 1백80도 바꿔버린 것이다.
북측은 2차 접촉에서부터는 1차의 합의사항은 전민련측의 입장과 다르다며 군사분계선앞에서 전민련측 영접인사가 마중나오도록 하고 차량도 전민련측이 제공한 승용차를 이용해야 하며 숙소와 회담장 역시 전민련측이 마련한 수유동의 아카데미하우스여야만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대해 우리측은 윤기복범민족대회 북측 위원장이 지난 25일 강영훈총리 앞으로 보낸 통지문에서 「북측 참가자들의 신변안전과 편의제공문제를 요청」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강총리의 위임을 받은 정부 당국자가 안내를 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며 전민련측에 북측인사들의 신변안전문제까지 맡길 수는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우리측은 정부당국자의 안내가 과거부터의 관례라는 점을 강조했다.
결국 나머지 접촉에서도 이견이 좁혀지지 못하다가 전민련측이 차량과 숙소등 문제를 정부안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정함에 따라 상황은 호전되는 듯 했으나 북측은 여전히 입장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북측은 우리측이 전민련대표 3명을 군사분계선까지 마중토록 조치하고 전민련도 정부측과 같은 의견임을 내세워 양측간의 합의사항 이행을 촉구했으나 이같은 내용의 통지문 수령자체를 거부했다.
북측은 마지막 6차 연락관 접촉서도 장소는 아카데미하우스로 해야 하고 이용차량에 정부당국자를 동행시킬 수 없다는 입장을 끝까지 고집,사실상 입경을 포기한 것이다.
북한측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진작부터 예정된 수순이었다는 것이 남북관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날 상오 제8차 남북 고위급회담 예비회담이 타결돼 「남북 총리회담」의 구체일정과 형식등 세부사항에 합의를 본 것과는 별도로 북측은 범민족대회 예비회의를 위한 입경만은 내심 꺼리고 있었음이 분명하다고 보는 것이다.
북측은 우리 정부측과 전민련간의 제한적 협조체제가 구축되자 서울 방문을 거부할 명분을 잃었고 이 때문에 대표단의 판문점 파견까지는 결정했으나 우리 정부의 완전배제라는 기존입장을 내세워 「행사무산」의 단서를 끝까지 마련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고위급 예비회담이 이견없이 타결됐음에도 불구,이날 상오 북측 대표단이 내보인 예상밖의 태도에서도 잘 나타난다. 고위급 예비회담에서 북측의 백남준단장은 합의문서명이후 행한 폐막발언을 통해 『전민련의 대회참가등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더욱 악화되고 고위급본회담 개최도 돌이킬 수 없는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종래의 기자회견도 생략하는등 어색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떠나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또한 이날 상오 6시40분 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는 중앙방송의 성명을 통해 『남조선의 58개 관제 반통일단체들이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절대로 허용할 수 없다』면서 『만일 이들 단체들이 대회에 참가하려면 전민련과 전대협을 비롯한 민족민주단체들의 구속된 모든 간부와 성원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확고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범민족대회의 성사자체에 대해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이는 전민련측이 58개 단체의 대회참가를 받아들인 현실과도 정면배치되는 것으로 북측의 숨은 의도를 감지케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북측은 결국 그들 나름의 내외적 필요성때문에 고위급회담은 추진하되 대규모의 인적 교류가 예상되는 범민족대회의 성사는 애초부터 부정적인 수용태세를 갖추고 있었다고 봐야될 것 같다.
우리 정부측과 전민련등은 우려곡절을 겪으면서도 북측에 대해 하나의 목소리로 입장을 조정,끝까지 서울 예비회담의 개최를 성사시키려 했던 반면 북측은 「남한 정부와 재야」간의 뜻밖의 화음에 직면,명분과 논리를 상실한 채 판문점에서의 「선전의도」마저 퇴색을 자초한 셈이라 할 수 있다.
이로써 북측은 「7ㆍ20 자유왕래제의」를 거부한 데 이어 인적 교류의 축적을 통한 동질화 모색이라는 우리측의 1차적 관계개선 노력을 수용할 태세가 부족함을 노정시키고만 것이다.
그러나 9월4일로 예정된 고위급회담 본회담이 절차와 형식에서 완전 합의된 이상 범민족회의의 무산만으로 남북대화의 경색분위기를 미리 우려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번 범민족 대회문제와 관련해 보였던 우리 정부측과 재야간의 「교감」은 뜻밖의 중요한 성과로서 향후 남북대화에서 우리측 내부의 전향적 상황변화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정진석기자>정진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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