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측은 끝내 오다말고 돌아갔다. 범민족대회 서울 예비회담은 기대만 부풀리고 허사가 된 셈이다. 아직은 시간과 타협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나 다시금 허망감이 엄습함을 억누를 수가 없다. 진정 북한은 만날 생각이 있는가 묻고 또 묻고 싶은 심정일 뿐이다.북한측 대표단은 회담날짜인 어제(26일) 판문점에 나타났다. 남북의 연락관들은 몇차례 대면하면서 사소한 트집을 걸고 넘어지며 입씨름만 벌이고 결국 파장을 불렀다. 트집은 간단하다. 북한측은 안내와 회담장소를 전민련에 맡겨야 한다고 우겨댔다. 남북 총리의 서신을 통해 신변안전과 편의제공을 희망하고 보장한다는 약속은 외면하고 우리 정부더러 아예 물러서라고 북한측은 고집했다. 참으로 한심하고 앞뒤가 꽉 막힌 주장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부와 전민련의 합의를 교묘하게 이간시키려는 책략이 너무 뚜렷하다.
범민족대회 참가를 놓고 정부와 전민련은 어려운 합의를 이끌어냈다. 즉 희망만 하면 개인이나 단체는 누구라도 참여할 수 있다는 보장이 그것이다. 이러한 바탕에서 정부는 예비회담에 나올 북한측 대표의 신변을 보장하고 편의를 제공할 것을 통보한 것이다.
그런데 전민련측은 회담장소와 숙소를 아카데미하우스로,정부는 인터콘티넨탈호텔로 정하고 의견의 대립을 나타냈다. 전민련이 회담의 성사를 위해 정부측의 요구를 수용키로 한 후에도 북한은 서울행을 끝내 무산시키고 말았다.
정부와 전민련이 또하나 염두에 둘 사실이 있다. 전민련은 그 성격이 어떠하든 순수한 민간단체임은 천하가 인정한다. 그 상대인 조평통의 정체는 과연 무엇인가. 이 기구는 북한의 통일전략을 주도하는 관제단체임은 너무나 뚜렷하다. 대남전략을 좌지우지하는 기구와 민간단체가 맞선다는 것은 프로와 아마의 대결이라 해서 무방할 줄 안다. 사리가 이러할진대 전민련이 당초 정부의 도움을 거부할 까닭이 무엇이었는지 묻고 싶다.
굳이 북한당국을 적대시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의 다원주의를 악용하여 정부의 입장을 궁지로 몰아 넣고 반정부투쟁을 강화해 보려는 의도를 이번에도 백일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북의 속셈은 빤하다. 남쪽은 반통일의 악마로,북쪽은 통일의 천사로 꾸며 선전전을 강화시키고자 함이다.
설령 북한측 대표가 서울에 왔다고 해도 그들의 거부자세로 미뤄 회담의 성과를 기대했다는 것은 무리였다고 할 것이다. 정부와 전민련이 합의한 참가희망 단체의 무조건 수용을 거절했으리라는 결론은 쉽게 내릴 수 있다는 판단이 확고하게 세워진다. 평양으로 되돌아간 북한대표는 판문점에서 남한을 흔들어 놓았다는 자만에 젖어있을지도 모른다. 이 사실을 우리는 눈을 밝히고 지켜보아야 한다. 북한집단의 정체와 속성이 그러하다.
서울 예비회담의 불발을 계기로 우리는 정부와 재야단체들에게 엄격한 권고를 전하고자 한다. 민족동질성의 확인과 확산을 위한 제의나 민중적 정서를 통한 접근도 통일을 향한 필수적 요구이긴 하다. 그러나 통일문제는 감정의 차원 못잖게 논리와 상대파악,내용 그리고 성격도 중요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통일운동의 주도권 다툼같은 인상은 어떤 명분이라도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좌절과 실망을 앞으로 얼마나 더 겪을지 모른다. 난관이 중첩해 있음을 똑바로 새겨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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