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형법정」무시 유추해석 허용/법지식 없는 판ㆍ검사 당서 임명베일에 가려진 북한의 법제도문제가 남북교류의 새로운 주제로 등장하게 됐다. 북한측이 노태우대통령의 7ㆍ20선언에 대해 국가보안법폐지,문익환목사 임수경양 석방을 주장하고 나서자 이종남법무장관이 23일 남북법무당국자회담을 제의함으로써 양측의 법제도가 공식현안으로 떠오르게 됐다.
이제까지 우리정부는 북한의 법제도나 사상범 강제수용 등 인권상황을 공식적으로 지적하지 않으면서 남북교류에 관한한 양쪽의 내부문제인 법제도 등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다가 이번에 우리의 국가보안법 구속자문제를 북한의 안전관계형사법ㆍ사상범문제와 함께 협의하자고 제의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안전관계형사법은 북한내부에서도 비밀로 돼있어 정확한 조문이 알려져 있지 않다.
북한은 지난50년 최고인민회의에서 형법을 제정,공포한이후 24년만인 지난74년 최고인민회의상설회의에서 개정형법을 마련했으나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포하지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 공안당국은 물론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형법조문을 입수치 못했고 북한형법을 전공하는 조총련계열의 한 법학자도 『북한의 정확한 형법조문은 구할 수가 없었다』고 저서에 기록했을 정도이다.
하지만 북한의 개정형사법이 구형법의 체계를 크게 바꿔놓았지만 내용은 전반적으로 유사하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어서 구형법을 토대로 북한의 안전관계법집행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한의 최고규범인 노동당규약이나 헌법은 「한반도 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고 나아가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인민민주주의의 혁명과업을 수행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온사회를 주체사상화하며 공산주의사회를 건설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따라 북한형법에는 반혁명죄(구형법 68조)를 두고 「군사적ㆍ국가적 비밀의 전달,원쑤의 편에 넘어가거나 외국으로 탈주하는 등 조국의 국가적 독립을 침해하거나 조국의 군사상 위력과 영토불가침에 손해를 주는 행위」를 한 사람은 사형과 함께 전재산을 몰수하는 등 가혹한 처벌을 하고 있다.
또 근대형법의 기본원칙인 죄형법정주의를 무시,「범죄적 행위로 그에 직접 해당하는 규정이 본법에 없을 때는 그 중요성과 종류에 있어서 가장 비슷한 죄의 조항에 준거해 처벌한다」(구형법 9조)고 유추해석마저 허용하는 등 인민재판방식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무리 중한 죄를 저질러도 15년으로 시효가 정해져있는데 비해 북한은 「반국가적 범죄 및 친일적 사상을 가지고 조선민족해방운동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행위에 대한 시효의 적용은 재판소의 자유재량에 의한다」(구형법 60조2항)는 비민주적 규정을 두고 있다.
북한형법은 이밖에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주권을 전복ㆍ문란ㆍ혹은 약화시킬 목적이거나 또는 공화국의 대외안전 및 정치적ㆍ경제적 제도의 기본을 문란 혹은 약화시킬 목적을 갖는 일체의 행위」(구형법 64조)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국가주권적대에 관한 죄를 정의,20여개의 처벌조항을 두고 있다.
무장폭동조직,영토침해,공화국에 대한 적대적행위,적국과의 연락ㆍ협조,반역,간첩행위,테러행위,국가해독행위,파괴행위,직무유기ㆍ태업,반국가적 범죄의 선전ㆍ선동,조직활동ㆍ단체참가,제국주의 참여 등의 죄목외에도 불고지,유언비어날조,증오심의 선동죄 등 수많은 안전관계 법조문이 대부분 사형과 전재산몰수만을 법정형으로 정하고 있다.
북한의 판ㆍ검사들은 근대법체계를 갖춘 대부분의 국가와 달리 일정한 전문지식이나 자격이 없어도 당이나 인민에 의해 임명되고 있다.
따라서 추상적이고 애매한 법규정과 근대법체계가 갖는 최소한의 인권보호장치도 없는 법제도하에서 비전문가들에 의해 집행되는 북한의 안전관계형사법은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지 얼마든지 처벌할 수 있는 자의적 도구에 불과할 뿐이다.<신재민기자>신재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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