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신집권 불만 「밖으로 돌리기」/중동 빈국ㆍ부국간 감정도 작용/과잉생산 사우디 겨냥한 OPEC 협상용 분석도적대관계를 유지해온 이라크ㆍ이란의 관계개선조짐,이라크ㆍ시리아간의 반목완화,미ㆍ이란간의 관계정상화 움직임등으로 해빙무드가 무르익어 가는 것 같던 중동에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유가분쟁이 터지면서 또다시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더구나 세계전체산유량의 70%를 차지하는 페르시아만 이슬람형제국간의 싸움이라는 점에서 지역세력균형이 깨지는 불안을 가져올 뿐 아니라 전세계 유가에 직접적인 파급을 미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이라크 주장대로라면 문제의 발단은 쿠웨이트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등이 OPEC(산유국기구)의 쿼타량을 무시한 채 원유를 과잉생산한데서 비롯됐다.
90년 상반기의 석유정책을 결정하는 지난 6월의 제86차 OPEC 총회에서 쿠웨이트와 UAE는 각각 현재의 1일 생산량 1백50만배럴과 1백9만배럴의 쿼타량을 생산능력과 원유매장량을 감안해 2백만 배럴이상으로 현실화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같은 요구가 유가불안정 초래를 이유로 거부당하자 쿠웨이트등은 독자적 원유생산 정책에 따라 과잉생산,금년 상반기중 한때 국제원유가는 OPEC 공시가격인 18달러를 훨씬 밑도는 14달러의 바닥세를 기록했다.
이에 가장 강한 불만과 반발을 표시한 국가가 바로 이라크이다. 추정매장량 1천억배럴 이상으로 세계 제2위의 산유국이면서도 국제유가하락으로 8년간의 대이란전 복구사업이 제대로 진척되지 않자 마침내 폭발하고 만 것이다.
사담ㆍ후세인 이라크대통령은 이라크혁명 22주년 기념일인 지난 17일 연설을 통해 쿠웨이트ㆍUAE등의 행위에 대해 『등뒤에서 독묻은 비수를 꽂는 격』이라고 강력히 규탄했다. 하루뒤인 18일에는 더 나아가 『군사적 침략과 다를 바 없다』고 규정하고 이에 맞선 군사적 대응마저 언급,주변국을 아연케 했다.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8년간의 대이란전 와중에 양국 국경지대에 걸쳐있는 루메일라 유전에서 24억달러에 이르는 원유를 도굴했을 뿐 아니라 자국영내에 침투해 군시설을 설치한 「파렴치한」이라고 몰았다. 이같은 배신행위로 이라크가 입은 피해만도 1백40만달러에 이른다는 주장이다.
이라크ㆍ이란전 중 형제인 이라크를 편들다 이란의 미사일 공격ㆍ민간기납치등 곤욕을 함께 치렀던 쿠웨이트로서도 「억울」하기는 마찬가지다.
모든 중동국이 그렇지만 특정지형지물이 전무한 사막에 분명한 국경선이 설정돼 있는 것도 아니다. 또 지하의 유전이란 것이 「담장을 넘어온 감나무가지」같은 격이라 언제라도 분쟁의 소지를 안고 있지만 왜 이라크가 그같이 분노하는지 속마음을 읽기에 분주한 형편이다.
더구나 쿠웨이트는 이에 앞서 지난 13일 스스로 50만배럴을 감산한다고 선언한 터였다. 하지만 73년 한차례 국경분쟁을 경험한 쿠웨이트로서는 군사대국인 이라크의 위협에 그대로 당할 수 없는 처지라 아랍연맹에 중재를 요청하는 한편 활발한 외교적 역공세를 취해 단결을 표방해온 아랍권이 자칫 양분화될 우려마저 있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바그다드에서 아랍정상회담을 주최,아랍권의 유대강화와 자신의 맹주역할을 다져온 이라크가 스스로 이같은 결속을 와해시키는 속뜻은 무엇인가. 중동분석가들은 그 이유를 대체로 이라크의 국내외적 상황에서 찾고 있다.
우선 19일 이라크의회에서 통과된 후세인의 종신대통령제 개헌안이다. 동구권의 변혁등 민주화바람에 맞서 88년 다당제도입ㆍ총선실시등 민주화일정을 밝혀온 후세인이 돌연 이에 역행하는 종신제를 채택함으로써 야기될 국민적 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한 「위기조장」용이라는 지적이다. 이는 종신제 개헌안 발의과정중 『위기를 극복할 종신영도자가 필요하다』고 역설한 부분에서도 잘 드러나 있다.
또 하나는 아랍권내부에서 미묘한 대립관계를 보여온 GCC(걸프국협력위)와 ACC(아랍국협력위)간의 주도권 다툼이다. 사우디,쿠웨이트 등 부유한 산유국으로 이뤄진 GCC에 대해 이들의 친미온건노선과 경제지원미흡등 불만을 품어 왔던 이집트,요르단등 중동의 「빈국모임」ACC를 대표해 리더인 이라크가 이번 일을 기화로 공세를 폈다는 것이다. 후세인은 사우디를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GCC의 리더인 사우디도 OPEC쿼터를 무시한 「전과」때문에 편안치는 않은 입장이다.
이라크의 의도에는 또 7백억달러에 이르는 외채부담금중 대이란전 당시 쿠웨이트,사우디등으로부터 빌린 3백억달러의 외채를 포기하도록 하는 압력도 포함돼 있다는 분석도 유력하다.
이상에서 볼 때 이라크는 전통적으로 자신의 한 토후자치국으로 간주,병합을 주장해온 쿠웨이트를 표적으로 삼아 다목적용 불만을 터뜨렸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핵무기개발ㆍ화학무기생산설 등으로 서방측에 의해 「가장 위험한」 인물로 꼽혀온 후세인대통령이 이번 사태로 그간의 중동평화기류를 흐트려 놓을 만큼 어리석은 지도자는 아니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따라서 그가 의도하는 국제적 지도자로서의 위치상승과 오는 25일의 제네바 OPEC 장관회담에서의 유가인상ㆍ쿼터량조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선제공세일 것이라는 분석이 오히려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윤석민기자>윤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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