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열망을 달성하려면 남과 북을 가로막은 빗장부터 풀어야 한다. 서로 만남의 단계없이 껑충 뛰어 통일이 이뤄진다는 생각은 있을 수 없다. 수가 많고 적든 만나서 입을 열고 마음을 나눠야 동질성 회복의 실마리가 잡히고 통일의 바른 방도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노대통령이 발표한 「7ㆍ20선언」은 이러한 판단과 정신을 바탕으로 민족 대교류를 제창한 것으로,통일을 향한 전진적 원리의 전개라고 할만하다. 아무 전제가 없는 남북한 자유왕래는 그 자체만으로도 분단해소의 청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측이 김일성의 신년사와 조평통의 성명으로 밝힌 「자유내왕과 전면개방」에 참뜻이 담겼으면 지체없는 수락의 뜻을 밝혀야 할 것이다.
시한부이긴 하나 민족 대교류 제의는 7ㆍ7선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일관되게 제의해온 인적 왕래와 물적 교류의 원리를 이 시점에서 구체화 하고 반드시 실현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진전없는 대화와 협상이 간헐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남북은 상호왕래의 필요성엔 인식을 같이하면서도 우리가 왕래를 통한 단계적인 협상을 추구해온 반면 북한측은 늘 정치ㆍ군사협상을 앞세워 왔다. 또한 왕래만해도 우리측은 이산가족으로부터 시작된 자유왕래이며 북한측은 정당과 단체를 대상으로 꼽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만한 차이점은 이번의 완전개방으로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확신이며 의지이기도 하다. 그러한 현실적 타당성은 어떤 논리로도 훼방할 수 없다.
7ㆍ20선언의 근간의 통일원리의 새로운 전진임이 분명하다. 이산가족을 포함한 남북한 민족구성원은 누구나 가고 오자는 것이다. 제한과 조건의 벽이 이젠 무너진거나 마찬가지다. 북이 오고싶으면 얼마든지 오라는 포용적 결단이다. 아울러 북이 문만 열면 줄을 지어 찾아 가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음이 아닌가.
통일의 실현을 위한 단계적 노력의 구체적 수순이 앞으로 어떤 반응과 변화를 초래할 지는 속단못한다. 우리가 취할 자세는 지레 흥분을 하는 감정적 대응보다 북한의 반향을 냉철하게 주시하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보완적 후속조치가 뒤따르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분단의 현실을 화합의 단계로 끌어올리려면,우리 내부의 정돈과 합의도 선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대통령이 북한이 교류를 받아 들이지 못해도 우리 사회의 전면개방을 일방적으로 실천하겠다고 밝힌 것은 매우 눈여겨 지는 대목이다.
이런 측면을 생각하면 7ㆍ7선언 이후의 혼돈을 새삼 교훈삼을 만하다. 통일방안이 진전되면 잇달아 기대와 과욕을 앞세우는 혼란상의 반복은 미리 피할 수 있게함이 옳다. 우리의 개방 태세가 정책이나 법규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갖춰져 있을 때 혼란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통일과 민족문제를 정치적 수단으로 삼는다는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섬세한 배려가 있어야 할 줄 안다.
여기서 거듭 밝혀둔다. 대화나 왕래제의나 협상엔 상대가 있음을 항상 먼저 머리에 떠올려야 한다. 북한의 폐쇄성이 쉽게 풀리리라는 바람은 성급하기 짝이 없다. 북한은 우리의 허점을 기회 닿는대로 찌르고 들어올 것이 뻔하다. 거기에 일희일비하다간 통일의지는 또한번 좌절감만 맛볼 것 같다.
노대통령의 이번 제의는 국내외 환경과 여건에 타이밍을 맞추면서 남북관계의 새 기류 형성에 기여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만든다. 이 기류가 한반도 평화정착과 통일 접근에 어떻게 작용할 지는 우리 내부의 강화와 북한의 대응여하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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