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 명암이 있듯,인생엔 애증과 영욕이 함께한다. 영예와 치욕은 극과 극으로 갈린다. 평범한 일생은 영욕의 대칭이 뚜렷하지가 않다. 유명인이나 지도자 또는 원로로 이와는 아주 다르다. 본인의 뜻과는 무관하게 이 구별이 엄격하다. 당대가 밝히지 못하면 후세의 역사로라도 캐내고야 만다. ◆우리 현대사 특히 정치사엔 이상하게도 영과 욕이 엇갈리지 않는 지도자나 원로가 드물다. 그만큼 이 시대가 굴곡과 파란과 왜곡의 세월이었다는 증거가 아닌가. 해위 윤보선 전대통령. 타계 소식과 더불어 신문엔 또 영욕이란 두 글자가 크게 떠오른다. 그의 일생에도 명암이 뒤섞임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아무리 순탄한 삶에도 여러가지 도전은 끊임없이 따르게 마련이다. 그의 영욕은 무엇일까. ◆해위와 군사정권과의 관계는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으나 운명적이 아닌가 싶다. 5ㆍ16 쿠데타가 나자 「올 것이 왔구나」하는 말을 남겨,두고 두고 구설을 탔다. 훗날 자신이 진의를 밝혔지만 해석은 그저 구구하다. 「정신적 대통령」이라는 말도 좀체 잊혀지지 않을 한 시대의 증언이다. 60년대 대통령선거에 나서 박정희후보에게 근소한 표차로 지고 울분을 달래며 토한 말이다. ◆이 두마디 속에 전임대통령의 영욕이 숨겨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강직한 민주투쟁은 영광의 역사쪽에 기록되리라. 한편 의아심을 품게 한 행적은 어떤 평가를 받을지 아직은 미지에 속한다고 봄 직하다. 역사의 판단에 맡겨둔들 늦다고 탓할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정치사의 비극은 공인으로서의 지도자가 영광의 외길로 줄달음치지 못함에 있다. 각박한 환경과 생각의 차이로 흠집을 냄은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결같은 지도자가 없고 그런 지도자를 만들어내지도 못하는 정치ㆍ사회풍토는 언제쯤 개선되고 밝아져 올지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영욕은 엇갈리지 말고 분명하게 갈라져야만 한다는 것을 거듭 통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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