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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보선 전대통령 영전에/고흥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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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윤보선 전대통령 영전에/고흥문

입력
1990.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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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에 바친 형극의 한평생해위선생님.

홀연히 접한 선생님의 부음에 오늘 아침 자택으로 달려가 영전에 엎드렸지만 아직도 창연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지난 봄 와병하셨을 때 그래도 강인한 성정과 절제해오신 평소의 생활이 선생님의 천수를 지탱해 주리라 믿고 병문안조차 변변히 못한 터여서 송구함으로 더욱 몸둘 바 모르겠습니다.

선생님이 누리신 천수는 범인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 있겠지만 향년 93세에 이르기까지 우리 정치사에 남기신 업적은 이승에 오래 남으시어 오늘의 정치를 지켜보셨으면 하는 마음을 자아내게 합니다.

저는 선생님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60년 4대 대통령선거를 목전에 두고 유석 조병옥박사가 서거하시자 선생님께서는 저를 안국동 자택으로 불러 『유석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서는 유석을 가까이 모셔온 당신이 정치일선에서 뛰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해위선생님.

선생님은 유석 사후 전통야당의 맥을 잇기 위해 불철주야 진력하셨고 5ㆍ16이후 군사정권밑에서 두번이나 야당후보로서 대권에 도전하시는등 우리나라 정부를 민주정부로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그후 고난의 길을 택하시어 공화당정권에 대항하는 야권세력의 정신적 대부로서 일관하셨고 스스로 몸을 던져 민주화투쟁에 불길을 당기기도 하셨습니다. 선생님의 강인한 투쟁은 76년 명동성당사건을 주도하시고 이로인해 법정에 서시게 됐지만 법정에서 밝힌 뚜렷한 의지는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전직대통령으로서 구태여 법정에 나가시지 않아도 누가 뭐라 할 수 없었는데도 선생님께서는 스스로 법정에 나가시어 민주화에 대한 열정을 토로,후대를 경계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정치가로서 깨끗이 지켜오신 생활자세는 국민으로부터 어떠한 오해도 받지 않는 덕목이었습니다.

80이 넘으시어 정치일선에서 물러서신 후 선생님에 대한 일부의 비판적 시각이 없지도 않았지만 저는 오히려 「인생을 관조하시면서 너그러움을 보였다」고 말하겠습니다.

해위선생님.

선생님은 보수적이고 엄격하셨지만 저에게는 많은 사랑을 주셨습니다. 5ㆍ16후 정쟁법에 묶여있던 62년 겨울 저는 감시의 눈을 피해 메디컬센터에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때 야당세력은 사전조직된 공화당에 대항하기 위해 선생님을 중심으로 은밀히 창당작업을 시작했지만 자금이 모자랐습니다.

진산으로부터 이말을 듣고 주치의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오바코트 주머니 곳곳에 돈을 숨겨 안국동 자택으로 잠입했을 때 『퇴원했느냐』며 반가워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그후 선생님의 침실에서 새 야당 창당등을 논의하던 일들도 잊기가 어렵습니다.

약관의 나이에 독립운동을 하신 지사였던 선생님이 통일의 기운이 점차 성숙해가는 시점에서 세상을 떠나신 것이 몹시 애석합니다.

부디 현세에서 못다한 꿈을 내세에서 이루소서.

90년 7월19일<필자=전 국회부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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