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와 회담서 뚝심발휘 「통독 나토가입」 수락/통독 초대총리 확실… 신유럽질서 구상 관심독일통일이 외부적 장애들을 하나하나 제거하고 「연내실현」이란 눈앞의 현실로 다가옴에 따라 통독을 주도해온 헬무트ㆍ콜 서독총리(60)도 6척의 체구에 걸맞는 정치적 무게와 부피를 지닌 「세계의 거인」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히틀러 이후 최초의 통일독일 재상으로 그를 꼽고 있다. 그를 과소평가해왔던 사람들은 그와 그가 해낸 일들을 새삼스런 눈길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빌리ㆍ브란트,콘라트ㆍ아데나워,헬무트ㆍ슈미트 등 쟁쟁한 전임자들의 뒤를 이어 82년 콜이 서독총리에 취임했을 때 그에게는 「국제문제에는 깜깜한 시골뜨기」라는 인색한 평이 뒤따랐었다.
역사에 대한 깊은 식견과 차가운 지성을 지닌 헬무트ㆍ슈미트에 비해 콜은 「저능아」라는 혹평까지 나왔다.
콘라트ㆍ아데나워의 명석함과 기민함에 견주면 콜의 어눌한 말과 느릿한 행동은 굼뜨다못해 답답한 느낌을 주었다.
집권초기 그가 얼마나 우습게 보였는지는 85년 그의 무식함을 빗댄 정치풍자집 4권이 잇달아 출판돼 불티나게 팔렸던 사실에서 엿볼 수 있다. 이 책들에는 콜의 「멍청함」과 「형편없는 외국어 실력」을 신랄하게 비꼰 풍자와 농담이 풍부하게 실려있다.
그중 『콜이 동독에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으나 소련측에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물이니 되돌려 보내라고 지시했다』는 농담이 당시 콜에 대한 서독인들의 평가를 웅변한다.
그러나 지난 16일 크렘린궁에서 고르바초프와 만나 통독의 최대걸림돌이었던 통일독일의 나토가입문제를 해결하고 고르바초프와 나란히 선 콜의 모습은 「20세기의 인물」인 고르바초프를 오히려 왜소하고 초라하게 할만큼 위풍당당한 거인의 풍모였다.
콜을 갑자기 거인으로 보이게 만든 바탕은 무엇일까. 1m96㎝,1백5㎏의 거구에 담겨있는 포용력과 대범함 그리고 상식에 기초한 현실감각 등,새로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한 사람들은 무궁무진한 자질들을 열거한다.
포용력은 콜이 그를 빗댄 농담집을 읽고나서 『하도 재미있어서 나도 배꼽을 잡고 웃었다』고 평했을때 일찌감치 인정을 받은 사항이다. 그렇지만 그의 포용력이 더욱 빛을 발한 것은 최근 니콜라스ㆍ리들리 영국 통상장관의 반독발언에 대한 대처때였다.
온 유럽이 들끓었지만 콜은 『나도 과거에 고르바초프를 선전에 능한 괴펠스에 비유한 적이 있었다』며 대범하게 넘겨버린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콜이 평범한 무골호인으로만 머물지 않는 것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현실정치감각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일 것이다. 흔히 콜이 구사하는 정치는 치명적인 독은 없지만 몸집이 거대한 뱀인 「아나콘더의 사냥법」에 비유된다. 콜은 목표물이 퇴로를 차단당해 꼼짝없이 될때까지 짐짓 방심한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움직이기 시작하면 저항할 수 없는 힘으로 죄어든다는 것이다.
통독문제에 관해서도 콜은 당초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측근에서 아무리 행동개시를 다그쳐도 꿈쩍도 않던 그가 일단 베를린장벽이 붕괴되며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하자 이번엔 주위에서 신중을 기하라고 뜯어말렸지만 아랑곳 하지않고 계속 밀어붙이는 「괴력」을 과시했다.
이러한 면모는 당초 통독의 이념적인 정통성을 물려받은 오스카ㆍ라퐁테느 사민당총리후보가 대세가 통독으로 기울어진후 통독신중론을 제기함으로써 스스로 함정에 빠진 것과는 뚜렷이 대비된다.
이념과 비전이 없는,그래서 통일의 당위성을 웅변조로 외치지 않았던 콜총리가 통독의 주역으로 떠오른 것은 독일의 분단자체가 이념대립의 산물이었다는 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군대대신 「마르크화」의 위력을 앞세워 독일의 재통일을 선도해온 콜총리가 신유럽,새 독일의 통합을 위해 어떤 구상을 하고 있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신유럽의 질서가 그의 숨겨진 비전에 따라 크게 영향 받을 수 있음을 유럽국가 모두가 경험했기 때문이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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