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들 술 뿌리며 왕생기원/담장쪽으로만 쓰러져 인명피해 무… “과연영물”감탄/조선초 중국서 옮겨심어… 4백년뒤엔 추사생가로통의골은 지금 기중이다.
우리나라의 백송가운데 가장 크고 아름다웠던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6백년생 나무(천연기념물4호)가 17일 폭우로 밑둥이 부러져 회생불능상태가 되자 주민들은 마음의 수호신을 잃게된 슬픔에 잠겼다.
비가 멎은 18일 아침부터 백송주변에 모여든 주민들은 길게 누운 회백색의 거대한 나무를 어루만지며 모두가 상주처럼 영목의 죽음을 애도했다. 골목에 가득찬 솔잎의 상큼한 수향은 백송의 불우한 죽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아침 일찍 찾아온 할머니들은 나무주변에 막걸리를 뿌리고 합장하며 극락왕생을 기원했다. 할머니들은 백송이 넘어지면서도 남북 양쪽으로 쓰러져 담장에 걸치는 바람에 전혀 인명피해를 내지 않은 것을 두고 『과연 영물』이라고 고마워했다.
나무가 부딪친집 바로옆의 신홍례씨(65ㆍ여)는 『여러 가구가 함께 사는데 나무의 돌보심으로 다친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최순건씨(76ㆍ종로구 누상동 152의5)는 『어렸을때 어른들로부터 이 나무가 옛날에 사신이 중국에서 갖다 심었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동네의 자랑거리가 사라지게 된것을 안타까워했다.
이 동네에서 40년이상 살아온 김경애씨(44ㆍ여ㆍ종로구 통의동 22의3)도 『어렸을때 나무 주변에서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까먹곤 했다』며 『백송이 있는 곳이라면 처음 온 사람도 금방 동네를 찾았는데 정말 아쉽다. 애들이 더 애석해 한다』고 말했다.
이 나무가 있는 터는 추사 김정희선생의 생가가 있던 곳으로 추정돼 안타까움이 더하다. 나무터에서 50m쯤 큰길쪽으로 가면 「김정희선생 나신곳」이라는 와비가 있다.
현장을 둘러본 윤국병한국조경학회고문(77ㆍ전 고려대교수)은 『종로구 재동에 있는 백송은 수령이 6백년인데도 생육상태가 좋다』며 『주변에 집이 들어서는 등 개발이 안됐다면 뿌리도 안 망가지고 1백∼2백년이상은 더 살았을텐데 천수를 다하지 못한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나무는 밑둥부분이 상당히 썩어있고 뿌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은 상태이지만 가지끝에는 올해 돋아난 솔잎이 상록의 빛깔로 여전히 싱싱했다.
이날 상오11시께 현장을 조사한 이창복 중앙문화재 5분과위원장(서울대 명예교수)은 『소생불능상태이니 밀둥에서 2m정도까지는 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나머지는 임업시험소에 연구용으로 제공하거나 시립박물관에 방부처리해 보관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밝혔다.
서울시는 문화재관리국 등과 협의,백송의 처리를 결정키로 했는데 고사한 뒤에도 서울시 기념물로 보호하는 잠실뽕나무처럼 갈라진 두쪽줄기를 붙여 보호하거나 베어낼 방침이다.
베어낼 경우에는 주민들과 함께 성대한 동제를 먼저 지낼 계획이다.
이 백송은 중국의 호북성과 하북성일대가 원산지이며 조선초기 중국에 간 사신이 가져다 심은 것으로 높이 16m,양쪽 줄기의 둘레가 각각 3.6m,3m씩인데 지난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문화재관리국의 보호를 받아왔다.
통의동 백송의 죽음으로 서울의 백송은 용산구 원효로4가 87의2에 있는 5백년생짜리와 종로구 재동 35의 6백년생,종로구 수송동 44의 천연기념물 9호 등 3그루밖에 없게 됐다.<이광일기자>이광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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