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측 정정불안” 명분 개방 「시간끌기」/남에 책임전가… 대내외 역공세/아직 본격 대화자세 미정 분석/군축논의 남북 고위급회담은 실익 고려 응할 듯북한이 17일 우리 국회의 파행을 이유로 오는 19일로 예정돼 있던 남북 국회회담 준비접촉을 무기연기한 것은 대내외적으로 우리측의 정국불안을 부각시킴으로써 한소 관계개선,북방 외교등으로 조성된 개방압력에 역공세를 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북한은 우리측과 오는 9월4일께 서울에서 남북 고위급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해 놓은 상태이나 기본적으로는 아직도 남북대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북한이 현재 후계문제와 경제난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데다 우리측의 개방압력을 체제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우리측의 자신감이나 적극적인 대화정책에 비해 북한은 최근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여왔고 수세적인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대결의식을 나타내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 국회의 법안변칙 처리및 야당사퇴 결의등 파행성은 북한측에 더할 수 없는 호재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번 회담연기를 통해 1차적으로 한국내 정치상황이 남북대화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화된 것처럼 대내외에 비쳐지는 것을 의도했다고 분석된다. 북한측은 이날 전화통지문에서 『귀국회에서 감행된 여당의 횡포는 지금 남한에서 광범한 사회계의 비난을 받고 있으며 야당의원들의 의원직 전면사퇴라는 위기국면을 빚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측은 또 『이와 관련해 국내외에서는 국회가 해산직전에 처해 있다고도 하며 총선거를 다시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도 평하고 있다』면서 『이러한 위기상황을 앞에 두고 정상적 회담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고 연기이유를 밝혔다.
이처럼 북한은 이번 회담연기를 통해 남북대화의 장애가 「민자당의 횡포」인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우리내부에 여론분열을 일으키려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와관련,정부의 한 당국자는 『북한은 이번 회담연기로 우리 내부에 여야간의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고 이를 국론분열로 증폭시키려는 저의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측은 또 이번 연기통고로 남북 국회회담이 원만히 진행되지 못하는 상황을 부각시킴으로써 8ㆍ15 범민족대회 개최등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연석회의」 주장의 명분을 강화시켜 나가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밖에 북한은 회담자체를 지연시킴으로써 회담진행에 따른 본회담 개최의 부담을 덜어보겠다는 계산을 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한은 대폭적인 인적왕래가 가져다 줄 개방바람의 유입을 우려,남북을 왕래하는 국회회담등 대규모 교환방문을 원치 않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실제 남북 국회회담준비접촉은 지난 88년 8월19일 1차 접촉이후 지난 1월24일까지 10차례에 걸쳐 개최돼 본회담 형태,회담장소 및 시기,회담운영 등에 대해 대부분 의견접근을 보았다. 다만 의제토의를 위한 모임의 형식및 의결방식,회담의제 등에만 남북이 약간의 의견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조금만 더 절충하면 완전타결돼 국회의원 전원이 남북을 오가는 대규모 인적왕래가 이루어질 단계에 와있다.
따라서 북한은 내부적으로 준비가 갖춰질 때까지 국회회담 본회담의 성사를 유보할 것으로 보이며 이를 위해 이번 우리의 국회파동을 이용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국회회담의 연기에도 불구하고 오는 9월과 10월의 남북 고위급회담은 큰 영향을 받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북한측은 소련등 주변국가로부터 남북대화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떤 형식이든 대화가 과거보다는 진전된 상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외부에 과시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고 파악할 수 있다.
또한 북한 자체로서도 남북 고위급회담이 군사문제등을 다룰 수 있는 좋은 기회이므로 굳이 피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북한이 현재 궁지에 몰리고 있는 유엔가입문제를 고위급회담에서 거론,우리측의 유엔가입을 일시 저지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기 때문에 고위급회담에는 적극 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밖에 남북 고위급회담으로 남북을 오가는 인원이 90명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규모 인적교류를 당분간 피한다는 북한의 입장에 어긋나지도 않는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국회회담 연기는 남북 고위급회담등 일련의 남북관계와는 분리된 독립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러한 남북정책은 당국자간의 공식회담과 별개로 「범민족대회」등 통일전선 형성을 추진하는 이중적 전략과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이번 북한의 회담연기로 우리측의 정국도 어느정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거나 사퇴를 결의한 야권은 이같은 행동이 북한에 의해 남북관계에 이용됨에 따라 사퇴의 정치적 의미가 일부분 변색하는 불편한 입장에 놓이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민자당도 사퇴등 국회파행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야당과 비슷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이러한 측면을 북한이 겨냥한 것일 수도 있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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