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분리 진전… 탈레닌화 실패/나머지 반은 급진파에 맡긴셈/「분당」민족ㆍ경제문제에 걸림돌불구 「개혁실험」효과【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소련의 향후 진로의 가늠자라는 점에서 전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진행되었던 제28차 소련 공산당대회는 결국 분당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록하고 폐막됐다.
산술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고르바초프는 이번 당대회를 통해 옐친이 그를 비난할때 흔히 쓰는 표현대로 「절반의 개혁」만을 성취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정치국 확대개편을 통해 당정분리를 가속화할 토대를 마련하고 보수파리더인 리가초프의 정치적 은퇴를 가져오게 했다는 점등은 고르바초프의 승리로 평가된다. 정치국원 거의전원 및 중앙위원 50%교체라는 대폭적인 「물갈이」를 통해 보수파들을 당지도부에서 몰아낸것도 당대회 대의원들의 보수적 성향에 비추어볼때 그의 지도력이 확고함을 입증해준다. 특히 당무를 총괄하게될 신설 부서기장직에 자파인물인 이바시코를 선출하는데 성공,당과 정부가 앞으로 개혁추진 과정에서 마찰을 빚을 소지를 해소시켰다는 점 역시 그의 승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탈레닌화를 통해 공산당을 의회민주주의 정당으로 탈바꿈시킨다는 당초의 구상을 관철시키지 못했다. 이때문에 결국 대회 막바지에 옐친과 민주강령의 탈당을 불러일으킨 것은 일단 고르바초프의 실패라고 보아야 한다.
고르바초프의 측근중의 측근인 야코블페프가 대회초반 『페레스트로이카는 당이 있건 없건 추진되어야 한다』고 발언한 것은 고르바초프가 이번 당대회를 통해 공산당을 「국가의 전위」적 위치에서 끌어내리고자 했다는 분명한 증거이다. 그러나 대회 폐막시 채택된 강령적 선언과 새로운 당규약은 이러한 구상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당운영의 원리인 「민주집중제」는 다소 완화되기는 했으나 그대로 온존하게 됐다.
「전위당」개념도 「정권당」개념으로 이름이 바뀐채 존속했다. 이 두가지 개념은 소련 공산당이 서구식의 의회주의 정당으로 변모하지 않았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성취한 「절반의 개혁」이 보다 급진적개혁을 향한 확실한 토대라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급진개혁파의 탈당사태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의 완승이라는 결론을 내려볼 수 있다.
우선 보수적색채를 그대로 가진 강령적선언이 개정될수 있는 여지를 남겨놓았다는 점이다. 당대회는 고르바초프를 위원장으로 하는 강령기초위원회 구성을 승인,내년 중반까지 새 강령을 마련하도록 했다.
이는 의회주의적 정당으로의 변신을 거부한 이번의 강령적 선언이 한시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고르바초프는 야코블페프,셰바르드나제,리즈코프,메드베데프 등 소련 정치의 실세들을 당정치국으로부터 철수시켜 공산당의 위상격하를 실질적으로 구현했다. 이로써 행정부에 대한 당의 영향력이 한층 감소할게 분명하다.
4백12명으로 확대개편된 중앙위 역시 노동자,농민 지식인 등 각계각층의 인물을 대거 참여시켜 계급정당의 성격을 희석시키는데 성공했다.
옐친과 민주강령세력의 탈당이 고르바초프에게 부담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노선전환문제보다는 「발등의 불」격인 민족문제 해결과 경제개혁 추진에 온 국력을 쏟아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는 당의 단결을 깨는 이들의 탈당은 조급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이 고르바초프가 하고자 하는바를 앞서 실천한 것이며,고르바초프의 구상을 사전에 「임상실험」하게될 것이라는 지적을 유념해볼 필요가 있다. 옐친,포포프,소브차크의 탈당으로 러시아공화국과 모스크바 레닌그라드는 명실상부하게 당정분리가 이루어졌다. 최대 정치조직은 공산당이지만 행정권은 비공산당이 차지하게 된 것이다.
포포프 소브차크는 탈당의 변을 통해 앞으로 공산당의 재산을 행정권을 통해 되찾아 주택건설등 민생문제 해결에 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런점에 비추어볼때 고르바초프와 탈당세력은 동일한 목표를 갖고있되 추진방법만이 다른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폐막연설을 통해 행정부에 대한 간섭자세를 바꿀 것으로 당원들에게 촉구했다. 이는 탈당자들을 도우라는 말처럼 들린다.
고르바초프와 옐친 등 탈당 그룹간의 차이점은 공산당과 공산주의에 대한 시각차이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이 앞으로 계속 정치과정에 참여하는 세력이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반면 옐친등은 과거와의 단절을 위해서는 공산주의 노선을 배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산당이 의회주의적 정당으로 재탄생할 가능성을 믿는 고르바초프는 옐친등을 『당에 참회를 요구하고 보복하려하며 결과적으로 페레스트로이카를 좌초 시키려는 세력』이라고 비난했다.
고르바초프는 미 CBS방송과의 회견에서 이들을 『경멸한다』고 말했지만 급진개혁세력이 「미래의 한 부분」이 될 것임을 인정했다. 급진개혁파에 대해 연정을 제의한 것도 동일한 목표를 갖고 있다는 기본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민주강령」의 탈당은 고르바초프가 이번 당대회에서 관철시키지 못한 나머지 절반의 개혁을 성취해낸 것으로 볼수 있다.
고르바초프가 옐친의 탈당을 두고 『정치적으로는 유감이지만 논리적 귀결』이라고 밝힌 것도 이를 뒷받침해 준다.
결국 고르바초프가 언급한대로 소련은 이제 본격적인 다당제시대로 접어들었다. 고르바초프의 남은 과제는 공산당을 의회주의적 정당으로 탈바꿈시킨뒤 서기장직을 물러나 국정에 전념함으로써 당정분리를 완성시키는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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