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당 개편통해 당정분리 길터/보수파,당노선 유지… 급변 제동/“급진파 탈당 시간문제” 전망속 「범개혁파 연합」관측도【모스크바=이장훈특파원】 28차 소련 공산당대회는 9일 당구조개편안을 통과시킨데 이어 10일부터는 당지도부 선출 및 당강령심의에 들어가 12일 폐막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고 있다.
지도부 구성과 당강령채택이 끝나야 보다 분명해질 것이지만 이번 당대회를 통해 고르바초프는 「실리」를 취했고 보수파는 「명분」을 얻어낸 것으로 중간평가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는 당기구를 자신의 의사대로 개편함으로써 당의 무력화를 통해 당정분리를 가속화한다는 당초의 의도를 관철시키는데 성공했다. 반면 보수파는 소련 공산당의 레닌주의 정당으로서의 골격과 기본정신을 존속시킴으로써 동구식의 개혁을 실현하고자 하는 급진개혁파의 요구를 저지하는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다.
「명분」과 「실리」의 교환이라는 측면은 9일 통과된 당구조개편안을 살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고르바초프가 당대회에 제출한 구조개편안은 ▲당서기장제의 폐지와 당의장제 신설 ▲당무를 총괄하는 제1서기직 신설 ▲당정치국의 해체와 당간부회 신설 등이 주요내용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편안은 기존제도의 존속을 원하는 보수파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서기장ㆍ정치국을 존속시키는 대신 부서기장직을 신설하고 정치국을 확대개편하는 쪽으로 수정되었다.
표면상으로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안이 제동이 걸린 것처럼 보이나 내용상으로는 고르바초프의 의도가 대부분 반영돼 이는 개혁파의 사실상의 승리로까지 평가되고 있다. 당지도부를 당의장과 제1서기로 2원화하려는 당초의 의도는 부서기장제를 신설,당무를 총괄케 함으로써 구현되었다. 고르바초프는 당서기장에 선출될게 분명하지만 일단 당무의 부담에서 벗어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에 전념할 수 있게된 것이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국을 확대개편함으로써 당권의 핵이었던 정치국에 「질적 변화」를 강요했다는 점이다. 새로운 구조개편안은 정치국을 서기장과 부서기장,그리고 15개 공화국 공산당 제1서기 등 17명의 당연직과 당중앙위가 선출하는 2∼6명의 무임소위원으로 구성,총 1723명으로 확대키로 했다.
이는 정치국을 정부의 정책에 관여하는 기구로서보다는 「당무회의」성격으로 탈바꿈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된다. 소련 공산당은 이미 권력독점을 폐지한 바 있고 러시아공,우크라이나공과 발트3국 등에서는 공산당이 의회를 장악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국 확대개편으로 국가정책에 대한 관여가 힘들어질 것은 분명하다.
보수파는 대통령인 고르바초프를 당대표라는 상징적인 위치에 붙잡아둠으로써 당과 국가권력과의 연계를 존속시키는 소득을 얻어냈다. 또한 현기구의 골격을 유지함으로써 레닌주의 정당으로서의 연속성을 확보하는 명분상의 승리를 거두었다.
보수파의 명분상의 승리는 10일 항목별 토의에 들어간 수정된 강령초안에서도 엿볼 수 있다. 당초 당대회에 제출된 강령초안의 제3장표제는 「당의 페레스트로이카」였으나 보수파는 이를 「당의 쇄신」으로 변경시키는데 성공했다. 수정된 강령초안의 곳곳에서 보수파의 입김을 발견할 수 있다.
「당은 사회주의적 선택과 공산주의적 전망에 기초한 정당이다」라는 표현에 「공산주의적 전망을 문명의 발전에 있어 자연스럽고 역사적인 조류로 간주한다」라는 내용이 추가됐다. 또한 군의 활동의 공개성과 최고회의에 대한 국방부의 보고의무를 언급한 부문에서는 「소련군내의 당조직과 당원을 통해 군에 대한 당의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라는 문구가 추가됐다. 이는 「민주강령」파가 주장해온 군의 비정치화 요구에 대한 군간부들로 부터의 반발을 수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당내민주화와 관련된 부문에서도 「현 공산당원은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다」라는 대목이 아예 삭제됐다.
이밖에도 당규약안을 통해 「민주집중제」의 원칙을 견지키로 결정한 것도 보수파의 압력에 대한 고르바초프의 양보로 풀이 된다.
이상을 종합하여 볼때 고르바초프는 이번 당대회를 통해 보수파의 주장을 상당부분 받아들임으로써 현재 당면하고 있는 ▲당정분리의 가속화와 ▲민족문제 해결을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는 당을 레닌주의의 사슬로부터 벗어나게 하려는 당초의 의도는 포기해야 했다.
고르바초프가 이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현단계에서 소련내 최대 정치조직인 공산당을 배제하고는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이러한 고르바초프의 중도적 선택은 급진개혁을 주장해왔던 「민주강령」등 급진개혁파의 반발을 초래할 게 분명하다. 옐친은 이미 지난 6일 연설을 통해 『개혁을 거부한 공산당은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으며 현지에서는 옐친과 「민주강령」의 탈당은 이제 시간문제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오른팔인 야코블레프가 레닌과의 결별등 공산당의 환골탈태를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고 또 고르바초프도 이번 당대회를 통해 당정분리를 진전시킨만큼,보수파를 배제한 개혁세력들간의 연합문제를 당대회 이후에도 계속 활발하게 모색할 것이라는 전망도 여전히 우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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