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무력진압 주장 비디오공개 사퇴 압력/당지도부선 정통성 확보위해 희생양 삼아페타르ㆍ믈라데노프 불가리아 대통령이 6일 전격적으로 사임한 것은 불가리아의 구공산당 집권세력이 스스로의 변신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정통성을 확보하지 못하고 있음을 입증하는 사건이다.
믈라데노프는 지난해 11월 독재자 지프코프를 축출한 무혈 「궁정혁명」을 주도,불가리아 민주화의 영웅으로 부각됐던 인물이다. 71년부터 외무장관을 역임한 믈라데노프는 이 혁명으로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했다가 공산당의 사회당으로의 변신과 함께 지난 4월 임시대통령에 추대됐었다. 또 지난 6월 최초의 민주적선거에서 사회당이 승리함에 따라 무혈혁명을 성공적으로 완결짓는 듯 했다.
그러나 그는 6월 총선직전부터 지난해 12월의 반공산민중시위를 무력진압 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폭로되면서 학생과 야당세력 및 당내개혁파들로부터 사퇴압력을 받아왔다.
당시 야당세력은 믈라데노프가 지난해 12월14일 국회의사당 앞에서의 반공산시위가 격화되자 『탱크를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장면이 수록된 비디오 테이프를 TV를 통해 공개,격렬한 여론의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믈라데노프는 즉각 이 비디오 테이프가 조작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지난 4일 전문가들로 구성된 조사위원회는 비디오 테이프가 『진실된 것』이라고 판정했다. 이에 따라 대학생등 야당진영은 10일의 신국회 개원에 맞춰 믈라데노프 퇴진을 요구하는 총파업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압력을 강화,집권사회당측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렇게보면 믈라데노프가 자진 사임한 것은 공산독재 유산의 척결을 요구하는 민중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독재자 지프코프의 측근이었던 믈라데노프를 희생양으로 삼아 사회당의 정통성을 굳혀보려는 안드레이ㆍ루카노프 총리 등 사회당 지도부의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회당은 6월총선에서 전체의회 의석 4백석중 2백11석을 차지,간신히 과반수를 확보했다. 그러나 반공산당 연합세력인 민주세력연합(UDF)은 1백44석을 획득,농민연합 등 군소야당세력과 함께 신헌법 제정등 새로운 체제확립 과정에서 강력한 견제역할을 할 태세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이들 야당세력은 이같은 견제공세의 가장 뚜렷한 목표로 「반민중적」인 믈라데노프를 설정,압력을 강화해 왔던 것이다.
사회당의 실세들은 지난 6월 총선에 앞서 이미 믈라데노프를 「희생양」으로 내놓기 위한 공작을 폈었다는 설도 있다. 이는 집권세력 내부의 비공개 회의에서 행한 믈라데노프의 「탱크동원」 발언이 담긴 비디오 테이프가 야당측에 유출된 경위가 의심스럽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또 이 비디오 테이프를 국영TV가 방영한 것과,사회당이 주도한 조사위원회가 『진짜』라고 판정한 사실 및 사회당기관지가 사임요구에 가세한 것 등이 사회당 내부의 공작이 아니고서는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믈라데노프를 속죄양으로 삼아 정통성 확보의 장애를 돌파하려는 사회당의 전략이 성공을 거둘지는 속단할 수 없다.
불가리아는 지난해 「민주화 도미노 현상」에 휩쓸린 동구제국중 가장 무리없이 체제전환과 지도부교체를 이룬 것으로 비쳐져 왔다. 그리고 민주선거에서 구공산당이 승리한 드문 기록을 남겼다. 야당세력들은 『표면적인 변화는 있었을 뿐 공산지배체제가 온존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어쨌든 아직은 사회당이 국민의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독 헝가리 등의 사회에서 나타났듯이 동구의 민중들은 결국 구공산세력으로부터 완전히 등을 돌리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불가리아 정정은 진통과 격변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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