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빈약한 시설… 우수학생 “사장”(대학의 위기:하)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빈약한 시설… 우수학생 “사장”(대학의 위기:하)

입력
1990.07.08 00:00
0 0

◎교수 태부족… 마이크 강의 성행/건물만 있고 기자재 없는 부설연구소 수두룩/“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노력않고 현실 안주서울의 명문 사립대 이공계의 한교수는 우리나라 대학현실에 대해 『교육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단적으로 말했다.

이교수는 『외국 유수대학에 최근 교환학생으로 보낸 제자가 어학실력의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거의 A학점을 받았다』면서 『이렇게 자질이 뛰어난 학생들을 사장시키고 있는 곳이 바로 우리나라 대학』이라고 개탄했다.

빈약한 교육여건으로 능력과 자질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기는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도서관 장서중 경성제대시절에 비치된 도서가 양과 질에서 훨씬 나은 것으로 평가된다』면서 『외국의 신간서적을 구입하기 위해 월급을 털어 외국의 친지나 아는 교수들에게 부탁해야 하는 처지가 부끄럽다』고 전했다.

대학의 본래기능이 교육과 연구라는데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교육외적인 정치ㆍ사회적요인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교육여건이 더욱 황폐해지고 한번 교수는 영원한 교수로 신분을 보장받아 연구에 진력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크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지난해 23개 대학을 종합평가한 보고서도 학생운동이 대학의 권위와 통제력을 약화시켜 학사업무에 대한 명백한 한계가 상실됐다고 지적했다. 또 교수에 대한 실적평가가 형식적절차에 그치고 있어 교수들이 자기혁신과 자질향상을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고 분석,교수업적평가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설정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교육과 연구의 질이 크게 뒤지고 있는 가장 큰 요인은 학생은 많고 교수는 적으며,시설과 연구기자재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문교부가 밝힌 전임교원 1명당 학생수 35.4명의 계산방식에 대해서도 교육전문가들은 편제정원이 아닌 재학생수로 환산하는데다 대학원생을 포함하지 않은 전근대적 방식이라며 이같은 계산방식을 쓰는 나라는 한 곳도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각 대학이 최근 우수교수를 초빙하기 위해 애쓰고는 있지만 아직도 많은 대학이 강의의 절반이상을 시간강사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이다. 현행 대학설치기준령에 의하면 전임강사 이상의 교수요원이 대학법정교수정원의 3분의 2이상을 차지해야하나 현재 전국대학의 시간강사수는 전임교원수 2만5천여명과 엇비슷한 2만4천여명이다. 90년도 전임교수확보율은 국ㆍ공립대가 78.1%,사립대가 66.1%로 평균 69.6% 선에 그치고 있다.

이같은 상황과 2백∼3백명을 수용하면서 마이크를 사용해야 하는 대형 강의실에서 교육의 질적향상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은 자명하다.

교육시설의 현실은 더욱 낙후돼 있어 최근 외국대학의 총장을 초빙한 모명문사립대가 이공대를 둘러보겠다는 외국총장을 만류하느라 애썼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이다. 국내 최고시설과 교육여건을 갖춘 서울대의 경우만 보더라도 다른 대학의 실상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서울대의 장기발전계획에 의하면 학생 1인당 예산은 동경대의 10분의 1,총도서수는 6분의 1이다.

이공계통 실험기자재의 90%가 차관에 의한 것이고 법정연구소 3개를 제외한 43개 연구소가 문교부연구지원금을 한푼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공계대비 인문사회계의 연구지원금은 87대13으로 심각한 불균형상태인데 첨단기자재는 내놓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서울대는 79년에 차관으로 5만달러짜리 입자가속기 1기를 들여왔는데 동경대는 2천만달러짜리가 2기나 있다. 핵물리학과의 한 교수는 『88년,89년에 서울대에서 처음으로 핵물리학박사가 2명 탄생했는데 모두 외국대학에 가서 실험기자재를 사용해 논문을 썼다』고 밝혔다. 부산대의 모교수는 외국에서 실험물리를 전공하고 돌아왔는데 기자재가 없어 이론물리로 전공을 바꿨을 정도라고 한다.

취약한 대학재정으로 연구소건물은 있으나 내용물은 없다. 서울대는 지난 4일 업체의 기부금으로 신소재공동연구소를 지었으나 기자재구입비 1천2백만달러를 마련할 여력이 없어 심지어 누가 연구소를 유치하라고 했느냐는 자조섞인 말이 나돌 정도라고 한다.

많은 대학의 교수들이 학교당국으로부터 연구과제당 2백만∼3백만원의 연구비를 받고는 기초자료수집밖에 하지못해 연구방향이 설정되면 관련분야의 업체들로부터 유사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로비를 벌여야할 판이라고 사립대의 한교수는 말했다.

이같은 현상은 상아탑적인 학문의 자유를 구가해야할 대학이 산학협동이라는 이름아래 기초학문을 외면하거나 산업에 예속되는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이 발행한 대학부설연구소편람에 의하면 전국대학에 1천1백여개 연구소가 있으나 연구비 지출이 거꾸로 매년 줄어드는 곳도 많고 장비,인력부족으로 개점휴업상태인 곳도 허다하다.

교육과 연구라는 대학본질이 민주화 자율화라는 구호속에 가려 「강습소」로 전락하는 대학의 위기에 메스를 대야할 시점은 더이상 늦출수 없게 돼 있다.<한기봉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