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년초 집권… 젊은인재 등용 개혁추진/최근 망명사태 개혁 가속화 계기될 수도제한적이나마 비교적 순탄하게 진행되는 듯 했던 알바니아의 개방ㆍ개혁정책이 지난 3일의 대규모 망명사태를 계기로 불안과 낙관이 엇갈린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서방의 일부 관측통들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라미즈ㆍ알리아(65) 인민회의 간부회의 의장(국가원수)을 축으로한 개혁파와 보수파간에 첨예한 대립과 갈등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서방의 관측중엔 지난 1944년 알바니아 공산정권을 수립했던 엔버ㆍ호자의 미망인인 네메지아호자와 프로콥ㆍ무르라국방장관이 주도하는 보수파가 비밀경찰 조직을 동원,이 기회에 개혁을 저지할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도 있다.
이밖에 알바니아내의 반체제조직을 중심으로 「루마니아식」 민중봉기가 발생할지도 모른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망명요청자들을 알바니아 당국에 인도한 티라나주재 쿠바대사관에 곧바로 폭탄이 투척된 것으로 미루어 알바니아의 반체제조직이 현정권에 위협이 될만큼 잘 조직돼 있음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알리아의장과 카르카니총리를 주축으로한 집권노동당(공산당)내의 개혁파가 당분간 주도권을 잡고 개혁정책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85년 집권초부터 알게 모르게 개혁의 기반을 조성해온 알리아의장은 그동안 정부요처에 개혁성향의 전문인력을 충원해온 결과,현재 정부 및 산하기구의 3분의2 이상을 비공산당원인 젊은세대가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이 알리아의장의 개혁추진에 가속도를 붙이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망명사건이 일어나자마자 출국희망자 1만5천여명에게 즉각 비자를 발급하고 국경개방의 뜻을 비추는 한편,내무부와 비밀경찰 지도부에 대한 인사조치를 단행하겠다고 밝힌 점이 이러한 전망을 뒷받침 한다.
알리아의장의 이같은 신속한 대응은 그가 지난 4월이후 공개적으로 추진해온 개방ㆍ개혁정책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일과성이 아니고 상당기간 동안 준비해온 것임을 엿볼 수 있게 한다.
1942년 공산당에 입당,2차대전기간중 대독 빨치산투쟁에 참여했던 알리아의장은 1944년 알바니아에 공산정권이 수립된 후,노동청년동맹 서기장(42) 노동당중앙위원(54) 교육ㆍ문화상(55) 당선전부장(58) 당중앙위 정치국원(61) 인민회의 간부회의 의장(82)을 거쳐 85년 4월 노동당(공산당) 제1서기에 취임하며 실권을 잡았다.
정치국원이던 67년에는 종교활동금지를 진두지휘,세계 최초로 「무신론」국가를 선포하게 하는 등 강경공산주의자의 이미지를 풍기기도 했으나 이미 집권하기 전부터 개혁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엔버ㆍ호자가 중병으로 누워있던 84년,당시 폐쇄정책을 고수하던 알바니아 지도자로는 이례적으로 티라나대 학생들에게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연설을 해 비상한 관심을 모은 일이 있다. 지금 굳이 이 연설의 의미를 캐본다면 알리아의장이 현재 추진하고 있는 EC회원국과의 관계개선 및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가입을 통한 유럽일원으로의 복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렇게 볼때 알리아의장의 개혁정책은 상당기간 면밀히 구상한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자신의 정치생명과 그가 추진하는 개혁정책의 앞날이 장기적으로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동구의 민주화개혁 도미노현상 속에서 공산체제를 그대로 온존시키는 제한된 개혁정책으로 언제까지 버텨낼 수 있느냐가 의문이다.
망명사태를 재빨리 수습하기 위해 내놓은 국경개방의 결과가 어쩌면 공산체제의 운명을 단축시키는 사태로 이어질지도 모를 일이다.<김현수기자>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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