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러시아기 대거등장 이례적/옐친 거명땐 거듭 박수갈채… 인기 입증/전 KGB간부 전향동기 간증하기도【모스크바 시위현장에서=이장훈특파원】 「공산당을 타도하라」소공산당이 자체개혁을 놓고 당대회에서 격론을 거듭하고 있던 3일 하오 모스크바시내 고리키공원에서는 그 공산당의 존재자체를 부정하려는 군중들의 함성이 메아리 쳤다.
이날 모스크바에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도시를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하오5시께 우산을 든 5천여명의 군중이 운집한 크렘린남쪽 5㎞지점의 고리키공원정문앞 광장은 「공산당타도」와 「민주화개혁」을 외치는 함성과 열기로 가득했다.
시위군중들은 우산과 함께 갖가지 반공산당구호를 쓴 플래카드와 깃발,상징물 등을 치켜들고 흔들고 있었다.
낫과 망치가 그려진 소련국기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적ㆍ백ㆍ청의 삼색선이 그려진 구러시아국기수십개가 펄럭이고 있었다.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진 플래카드도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 낫과 망치옆에는 나치스의 문장과 해골이 함께 그려져 있어 공산독재의 잔혹함을 매도하고 있었다.
리투아니아ㆍ우크라이나 등 민족주의공화국의 독자국기를 흔드는 군중들도 있었다. 무정부주의자 단체를 상징하는 검은색 깃발도 보였다. 시위군중들의 주의ㆍ주장이 저마다 상이함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된 주장은 「공산주의반대」 였다.
하오 5시30분께 모스크바 시의회(소비예트)대의원 알렐리ㆍ파데예프가 공원정문에 설치된 연단에 올랐다. 『1917년 권력을 빼앗아갔던 악당들을 타도하자』고 포문을 여는순간 군중들은 환호를 터뜨렸다. 파데예프는 이어 모스크바시의회가 의사당안 정면에 설치돼 있던 레닌흉상을 철거한 사실을 지적했다. 『잘했소』라는 고함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파데예프는 『대신 3색러시아국기를 설치했다』며 『이 우리들의 국기가 자유러시아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박수와 환호가 광장에 메아리쳤다.
개혁파주간지 아가뇨크편집장 비탈리ㆍ코로디치(인민대표대회 대의원)는 『공산당은 크렘린의 거창한 지붕아래,에어컨속에서 당대회를 열고 있고,우리는 여기 이렇게 빗속에서 모였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그러나 우리가 빗속에서라도 이렇게 모여서 단결할 수 있다면,우리를 위협하는 공산주의자들 보다 강력해 질 수 있다』고 외쳤다.
저명한 시인 예프게니ㆍ예프투셴코가 등단했다. 그는 언제나와 같이 자작시를 낭독했다. 공산체제를 『국민과 국가의 가슴에 매달려 젖을 빨고,끝내 그 젖을 물어뜯는 돼지새끼』로 지칭한 신랄한 비유였다. 군중속에서 통쾌하다는듯 폭소가 터져나왔다.
소련최고의 연극연출가 유리ㆍ류비모프는 『소련은 지금 끔찍한 상황에 있으며,우리는 이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벨체코대통령의 말을 인용했다.
『지난 40년간 우리 모두는 전체주의체제에 봉사한 죄악을 저질렀다. 우리는 이 끔찍한 제도에 봉사함으로써 모두가 짐승처럼 됐다』고.
류비모프는 『공산당지도자들의 얼굴에서 지적인 그림자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러시아어조차 말할줄 모른다』고 외쳐,군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어 그는 스탈린이래 고르바초프에 이르는 역대소련지도자들의 남부악센트를 흉내냈다. 특히 말년의 브레즈네프가 헐떡이며 어눌하게 말하는 것을 흉내내며 조소했다.
역대지도자들의 정통성과 능력을 송두리째 부정하면서 공산혁명이전의 러시아민족주의에 대한 강렬한 신앙을 표출하는 장면이었다.
급진개혁파의 리더 보리스ㆍ옐친은 이날 시위에 참석하지 않았으나 연사들이 그의 이름을 언급할때마다 환호가 이어졌다.
그러나 이날 가장 많은 환호를 받은 연사는 전직KGB고위간부로 최근 「민주강령」에 가담한 올레그ㆍ카루긴 육군소장이었다.
그는 2주일전 KGB가 아직도 도청과 종교ㆍ노조조직침투공작등을 자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서방언론에 폭로했다가 지난달 30일 장군계급을 박탈당했었다.
카루긴은 『미국에서 근무하는동안 민권운동가들과 반전주의자들의 활동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며 그의 「전향」동기를 「간증」했다.
카루긴은 자신의 장군계급이 박탈당한것에 대해 『나는 아직도 군인이다. 자유를 위한 군대의 군인이다』고 선언했다.
2시간 가까이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공원주변과 인근거리에는 정ㆍ사복경찰관이 경계를 펴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비무장이었고,긴장된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불과 5개월전까지 공산당이 국가권력자체이던 나라가 이토록 급속히,그리고 전면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분명한 것은 공산주의와 공산당이 이미 이사회에서 존경과 주도력을 함께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정작 공산당대회에서의 열띤 논쟁은 거리에서는 공허하게만 느껴졌다. 오히려 민주주의와 러시아민족주의가 결합된,뭔가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모스크바를 휩쓸고 있는듯한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소 당대회 정치국원보고와 반응
▲야코블레프(주류파)
①보고내용
서기장 보고에 동의. 당의 도덕성 회복시점. 보수적조류는 당이 아직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증거
②반응
폭넓은 지지를 나타내는 박수 여러차례
▲리즈코프(주류파)
①보고내용
정부의 경제계획안은 중앙과 현장의 지지를 못받고 있는게 사실. 그러나 가격개혁없는 경제개혁 달성은 불가능
②반응
냉담. 가격인상불가결 발언에도 무반응
▲메드베데프(중간파)
①보고내용
85년이후 당이 선택한 길은 정당. 사회와 인간의 해방은 진전됐으나 이데올로기 상황은 악화되고 보수적 기운이 조장되고 있음. 사회ㆍ경제혼란과 민족문제 심각
②반응
불신임 요구외침과 소란으로 연설몇차례 중단
▲리가초프(보수파)
①보고내용
사유제도입은 사회의 계층화. 사회주의적 가치가 최종목표로 이데올로기 일탈을 불허. 전위당만이 사회주의 개혁완수가능. 개혁은 단계적으로
②반응
보수파ㆍ군부를 중심으로 여러차례 큰박수
▲셰바르드나제(주류파)
①보고내용
군축으로 향후 5년간 2천5백억달러 절약가능. 전인류적 가치에 의한 외교성과 달성. 통독은 군축과 병행해야
②반응
군사비삭감 발언에 군부에서 불만의 소리. 박수도 여러차례
▲그류츠코프(보수파)
①보고내용
외부로부터의 위기감 마비. 불안정기엔 대통령ㆍ서기장겸임지지. KGB내 정치조직존속 필요
②반응
민주강령파 공격때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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