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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허망함」 일깨운 42년만의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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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의 허망함」 일깨운 42년만의 재회

입력
1990.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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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조씨ㆍ빨치산 외팔이 부대장 최태환씨/최씨 “그때의 아픔 후대에 전할터”/이씨 “귀국해 친지들과 살고 싶어”6ㆍ25전쟁종반 휴전회담 북한측수석대표였던 이상조씨(74ㆍ소련 백러시아공화국 민스크시거주)와 인민군중좌로 빨치산활동을 했던 「외팔이부대」 부대장 최태환씨(62ㆍ서울 동작구 노량진2동 294의26)가 만났다.

6ㆍ25라는 민족의 극한상황에서 「해방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만남은 이씨가 전쟁기념사업회주최 학술대회참가차 한국에 왔다는 소식을 들은 최씨가 1일 호텔로 찾아감으로써 이루어졌다. 지난48년 북한노동간부 부부장이던 이씨가 중국팔로군 산하 군정대학을 갓 졸업한 최씨를 소환,평양의 중앙당사무실에서 만난지 42년만이었다.

최씨는 객실에 들어서자마자 예전의 위엄을 갖춘 인민군부참모장(중장)을 본것처럼 『이장군님』하고 부르며 두손을 잡았다.

이씨의 추천으로 인민군에 발을 들여놓은 최씨는 초대 인민군 역사기록부장을 거쳐 팔로군출신으로 편성된 6사단 정치보위부장으로 참전,낙동강전투에서 오른팔에 중상을 입고 퇴로가 막히자 지리산에 들어가 유명한 「외팔이부대」를 이끈 장본인. 젊은시절 이념적 지표이자 우상이었던 「이장군」을 재회하자 최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그동안의 생활을 털어놓았다.

최씨는 전쟁당시 이씨의 소식을 계속듣고 있었으며 이씨가 정전회담 수석대표일때는 투옥됐던 자신이 북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었다고 회상했다.

최씨는 또 『최근 연변거주 작가 김학철씨가 쓴 「격정시대」의 주인공 김택명으로 등장하는 이장군의 모습을 대하자 꼭 만나뵙고 싶었다』고 말했다.

최씨는 51년겨울 지리산토벌대에 체포돼 9년간 복역한후 성치않는 한팔을 이끌고 날품팔이,만화가게 등을 하며 전전하다 지금은 오월,신록 등 골프구락부의 중개인으로 회원 1백50여명의 예약과 게임운영을 도우며 부인 서문자씨(50),1남5녀와 함께 살고 있다. 투쟁대상이던 부르주아들의 놀이인 골프를 도우며 생계를 이어갈만큼 변신한 셈이다.

굶어죽고 얼어죽고 총에맞아 3번죽는다는 빨치산생활과 군사재판 등 죽을 고비를 수차례넘긴 최씨는 『이제 나는 덤으로 사는것』이라며 『죽어간 수많은 젊은이들의 아픔을 다음세대에 전하는 일을 하겠다』고 밝혔다.

최씨는 이우태씨(68)가 펴낸 「남부군」에 이어 인민군 역사기록부장이었고 고급군관으로 빨치산활동을 지휘했던 기억을 되살려 89년11월 「젊은혁명가의 초상」(공동체간)이라는 수기도 펴냈다.

지난해 9월 59년만에 한국에 온 이후 이번이 3차례 방문인 이씨는 『나이가 들면서 고향생각을 자주 하게 됐으며 수구초심의 심정으로 고향에 뼈를 묻고 싶다』며 『사정이 허락되면 전가족이 귀국,부산 동래의 이복누이동생 경애씨(42) 등 친지들과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그렇게 되면 장군님과 함께 6ㆍ25남침사실을 증언하고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비판하며 속았던 혁명의 실체를 밝힐 수 있겠다』고 반겼다.

최씨는 『그때는 완전히 다른 시대였고 우리모두는 지금과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었다. 지금 그런일이 되풀이 된다면 나는 다르게 행동할 것』이라고 말한 트로츠키살해범 메르카데르의 석방당시의 변을 인용,이념을 좇아 혁명의 꿈에 살아야 했던 두사람의 회한을 대신했다.

두사람의 만남은 이념의 허망함과 역사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무력한가를 확인시켜주는 것같았다.<이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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