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옥사건과 연계 파장공세 야/뚜렷한 진화대책 없어 냉가슴 여/추가폭로설에 민자는 계파간 시각차… 정치불신 자초순탄하게 진행되던 임시국회가 예기치 않았던 암초에 걸렸다. 평민당이 87년 대통령 선거당시 「서울시 예산의 전용」을 주장하며 총리의 명확한 답변을 고리로 걸어 28일 본회의를 공전시킨데 이어 29일에도 브레이크를 풀지 않아 대정부 질문은 차질을 빚었다.
당초 이번 임시국회는 ▲지자제선거법 ▲보안법및 안기부법개정안 ▲국군조직법개정안 등 여ㆍ야합의가 어려운 쟁점현안이 산적해 본회의 대정부 질문이 끝나고 상임위 활동에 들어가는 내주부터 적잖은 파란이 예상됐었다. 그러나 평민당은 대정부질문일정중 「서울시 예산전용」 문제를 조기에 쟁점화시킴으로써 임시국회의 파행운영,또는 공전이 앞당겨지는 느낌이다.
평민당이 국회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통해 터뜨린 「예산전용」 관련문건은 「특별기금」이란 명목의 몇개에 이르나,쟁점부분은 「노태우총재 명의의 격려금」으로 1억6천만원을 구청장과 동사무장에게 주도록 했다는 문서이다.
강총리는 답변에서 이른바 「특별기금」이란 것이 71년부터 부처별 예산편성에 끼워넣어온 것으로 관례적인 것이며 주민숙원사업을 대통령이 해주는 것처럼 꾸민 일종의 행정편의 수단일 뿐이고 에산전용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평민당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진 문건은 「노태우총재 명의의 격려금」. 현직 대통령의 선거와 관련돼 있기 때문에 문건의 사실여부에 관계없이 여권에도 골치아픈 일이지만 평민당은 정치공세의 호재를 맞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부측은 『서울시 예산에서 노총재 명의의 격려금이 지급됐는지의 여부를 조사해 보고 답변하겠다』고 했으나 평민당측은 28일 하오 본회의부터 이 문건에 대한 총리의 선해명을 요구하며 사실상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작전을 구사하고 있는 것이다. 평민당은 국회의장이 이 회의를 진행시키려고 할 때마다 의사진행발언을 요구하는 바람에 28일만해도 6차례나 정회소동을 빚고 끝내는 자동유회가 되기까지 했다.
이같은 국회운영에 민자당은 현재로선 속수무책이다. 당장 파행으로 운영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평민당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는 처지인 것이다. 총무회담에서 평민측은 ▲국회본회의 답변에서 총리가 사과ㆍ시인하고 ▲국정조사권을 발동한다는 요구조건을 내걸고 이를 의원총회를 열어 결의하는등 강경일변도다.
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은 29일 『과거 5공당시의 잘못된 것이 있다면 사실대로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는 것이 당의 입장』이라고 말했지만 일관되게 이 문제를 풀어나갈 통일된 지휘체계가 없는 것이 민자당의 실상이다. 87년 대통령선거문제에 대해선 당내시각도 계보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민자당의 원내작전팀은 평민당이 『지금까지 폭로한 문건이외에 2백페이지의 문건이 있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어 섣부른 해명이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민자당에는 돌출된 암초일 수 있지만 평민당은 이문옥 전감사관 문제와 결부시켜 정치쟁점으로 부각시킨다는 전략의 일환으로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이용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국회가 공전될수록 여론의 관심은 「서울시 예산의 전용」의 진상과 이문옥 전감사관과의 상관관계로 쏠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평민당 지도부는 계산하고 있는 것이다.
평민당은 이 문제를 장ㆍ단기적으로 활용할 것이라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우선 이 사건의 확대가 여권에 타격을 입힌다는 점이다. 즉 국회가 소용돌이칠수록 이문옥감사관 사건을 쟁점으로 부각시키게 되고 정부의 실책을 드러내 보일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또 이번 임시국회에서 노리는 민자당의 목표를 어렵게 만들겠다는 속셈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국군조직법개정안등 쟁점현안처리에 대한 민자당의 설득기반을 좁힘과 동시에 지자제협상에서 평민당의 유리한 고지점령을 노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김대중 평민당총재는 지자제실시에 대한 집념을 강하게 보이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지자제 실시는 민자당에 대한 국민적 시험대로 평민당이 마다할 수 없는 카드로 보는 분석이 우세해지고 있는 것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김대중총재의 평민당은 궁극적으로 앞으로 심상치 않게 전개될 「개헌정국」에서 스스로 큰 변수임을 분명히 해두려는 자기위상의 정립으로 볼 수 있다.
쉽게말해 「평민당을 무시하고 민자당이 정국을 끌고갈 수 없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보여줄 필요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민자당안의 복잡한 사정을 감안,청와대측에 대한 모종의 시그널일 수도 있다는 진단도 정치권에는 있다.
문제는 민자당이 일관성있는 자세와 중심을 잡고 평민당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과거 민정,민주,공화 3당의 관성에서 충분히 벗어나지 못한 민자당 지도부는 현안에 대한 통합대응능력 배양에 실패하고 있으며,속마음은 내각제개헌등 앞으로 전개될 권력구조변경 움직임에 쏠려있는 것이 현실. 당직자들이나 의원들이나 현안해결에 대한 집념은 거의 보이지 않고 있는 대신 「내각제개헌」문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1백50회 임시국회에서 민자당은 4당체제아래서 해결하지 못한 쟁점현안들 즉 ▲광주보상법 ▲국군조직법개정안 ▲보안법ㆍ안기부법안과 남북교류법안등을 처리하고 각종 특위를 해체하는 등 법적 청산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산이었다.
그러나 임시국회 초반에 나타나는 징후들을 보면,이같은 현안에 대한 무리없는 해결이 나올 것 같지 않으며,따라서 더욱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자초할 전망이다.
특히 평민당의 정치공세가 계속되면서 국회운영이 이로인해 파행을 거듭할 경우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김수종기자>김수종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