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마르크화 이미 용광로에/동백림엔 서독상인ㆍ상품 홍수/벌써 동독화폐론 물건 안팔아/경쟁력잃은 동독공장 폐업 속출… 집단 해직사태동ㆍ서독은 7월1일 경제화폐통합을 단행,분단반세기만에 완전통일을 향한 마지막 징검다리를 건넌다. 정치ㆍ군사적통합을 아직 남겨두고 있지만 동독의 공산경제체제가 완전 해체되고 화폐ㆍ기업ㆍ노조ㆍ사회보험등 모든 경제사회제도가 하나로 합쳐지는 실질적인 통일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역사적인 독일통일의 현장과 의미를 점검해본다.【편집자주】
동ㆍ서독 경제통합은 공식적으로 7월1일 발효되지만 베를린현지의 분위기로는 이미 독일은 통일됐다.
서베를린에서 동베를린으로 넘어가는 분단의 상징 찰리검문소는 지난 22일 통째로 제거됐다. 검문소건물뿐만 아니라 동독측의 여권조사나 비자발급도 없어졌다. 베를린장벽 붕괴직후까지 35마르크,그리고 최근까지 5마르크를 받던 비자발급료를 준비할 필요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28일 동베를린의 중심부 알렉산더광장에 있는 국영저축은행앞에는 정상폐문시간인 하오 5시가 지났는데도 동베를린시민들이 5백m이상 긴 줄을 서 있었다. 일요일인 7월1일 상오 9시부터 시작되는 동ㆍ서독마르크화의 교환을 위해 필요한 은행구좌를 개설하고 화폐교환을 신청하려는 시민들이었다.
동독시민들은 이날 한사람당 4천마르크까지는 동독마르크를 1대1의 비율로 서독마르크화로 교환받게 된다. 4천마르크초과액은 2대1의 비율로 바꿀 수 있다. 다만 60세이상의 노인들은 6천마르크까지,미성년자들은 2천마르크까지 1대1로 바꿔준다. 외국인들은 3대1로 바꿀 수 있다.
동ㆍ서독인들이 각기 다른 화폐를 사용하게 된 것은 지난 48년 6월부터였다. 그후 서독마르크화는 계속적인 경제력확대에 따라 세계최고수준의 구매력을 가진 화폐가 됐다. 반면 동독마르크화는 70년대이래 경기침체로 인해 가치하락을 거듭,암시장에서 서독마르크화에 대해 20대1의 약세를 보여왔다. 이제 동독인들 모두가 그토록 갖고 싶어하던 서독마르크화를 뭉텅이로 손에 쥐게 된 것이다.
서독 중앙은행 분데스방크는 이미 지난주부터 2백50억마르크의 화폐를 수십대의 무장현금수송트럭으로 동독전역요소에 수송했다.
20마르크짜리지폐 6천톤과 동전 5백톤에 이르는 엄청난 양이다.
1일 하오 4시까지 1만여곳의 은행ㆍ우체국ㆍ경찰서ㆍ관공서등에서 일제히 「꿈의 서독마르크」가 동독인들에게 나눠진다.
회수된 동독마르크화,카를ㆍ마르크스의 초상이 새겨진 못쓰게된 지폐들은 폐광된 암염광산이나 우라늄 광산지하깊숙이 묻힐 예정이다. 염색처리된 면으로 만든 지폐를 소각할 경우 유독가스가 나오기 때문에 땅속에 묻는 것이다.
알루미늄제 동전들은 이미 라이프치히 근교의 용광로에서 녹여지고 있다.
지하에 묻히거나 녹아없어지는 것은 화폐만이 아니라 동독의 경제체제자체다. 지난 5월19일 경제화폐통합에 관한 국가협정이 체결된 직후부터 동독마르크화와 동독상품들은 외면받는 신세로 전락했다.
동베를린의 쇼핑중심가인 쿠담거리의 상점들에는 동독제 상품들대신 카메라ㆍ시계ㆍ비디오카셋ㆍ의류ㆍ식품등 서독상품들이 진열돼있다.
그러나 남아있는 동독상품들은 파격적인 가격으로 바겐세일이 실시되고 있다. 정가 1백10마르크짜리 구두 한 켤레가 30마르크로 인하된 가격표가 붙어 있으나 사려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6개월전만해도 10여년씩 순서를 기다려야 했던 트라반트승용차도 9천2백70마르크에서 6천2백70마르크로 인하했다는 광고가 나붙어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외면당하기는 마찬가지다.
동독상품이 모두 소멸될 듯한 상황속에서 대신 동독인들의 수중에 「만나」처럼 떨어진 서독마르크화를 노리는 서독상품과 서독상인들이 동베를린을 비롯,동독 전역을 휩쓸고 있다.
알렉산더광장 근처에는 동독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던 서독제자동차전시장이 들어서 동독인들을 유혹하고 있다. 최저 2만마르크가 넘는 새 차들보다는 1만마르크정도의 폴크스바겐 폴로소형중고차가 인기를 끌고 있다. 서독 상인들은 『지금 당장 차를 몰고가고,대금은 7월에 지불하면 된다』고 선심을 쓰듯이 동독인들을 꾀고 있다.
공산품뿐만 아니라 「서유럽 휴가여행」을 파는 여행사들과 「주택수리비대출」등을 내세운 금융기관들도 대거 진출했다. 함부르크등의 섹스숍광고 캐털로그를 뿌리고 다니는 업자들도 동독전역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통합의 소란속에서 벌써부터 경제구조붕괴의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화폐교환일이 임박하면서 상점들이 서독 마르크화를 노리고 물건을 팔지않아 패닉현장마저 나타나고 있다.
동독정부는 30일까지는 동독마르크를 받지 않는 것은 불법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식료품가게들이 빵ㆍ고기ㆍ설탕 등 기본식품들은 모두 치원버린것은 물론,국영자동차판매회사도 동독마르크화를 거부,비난을 받고 있다.
28일 하오 알렉산더 광장에는 두 그룹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청소원들이 2백여대의 청소작업 트럭들을 세워놓고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다. 이들은 지금까지 쓰레기 1톤처리에 11.75마르크인 임금을 서독수준인 톤당 1백13마르크 가까이 인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청소원들은 서독상품이 대거 유입되면서 쓰레기량도 절반 가까이 늘어났고,무엇보다도 앞으로 서독상품들만이 휩쓸것이므로 그만한 임금을 달라는 주장이었다.
다른 쪽에서는 1천4백여명의 국영방송국직원들이 집단해직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자유는 여러가지 이름을 갖고 있다. 지난해 11월 우리가 부르짖은 자유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고 외치고 있었다. 이같은 해직사태와 집단항의 시위는 특히 소비재생산공장이 있는 도시들마다 빈반발하고 있다.
밀려드는 서독상품에 경쟁력을 잃은 공장들은 서둘러 인원을 감축하거나 아예 문을 닫고 있고,이에 따라 항의시위가 갈수록 거세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