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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여러분/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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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여러분/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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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게 택시를 탔다. 서지 않고 내빼려 하는 택시의 앞자리에 얼른 앉아 행선지를 댔더니 운전사는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빈차로 나올 것이 뻔한 지역이기 때문이었다.몇차례 차를 세워보던 운전사는 끝내 합승객이 잡히지 않자 포기하고 라디오 대신 설교테이프를 크게 틀었다.

잘못 걸렸구나.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고 딴청을 부리기 시작했다. 내가 듣나 봐라. 절대로 안들을 테다. 그러면서 자꾸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빌딩숲 사이로 보는 달은 왜 저렇게 처연한다. 간판장이들은 왜 한결같이 「스텐드바」라고 틀리는 표기를 할까.

그러나 중국교포들을 위해 선교활동을 하고 돌아온듯한 목사의 「사자후」는 마구 귀로 쏟아져 들어왔다. 대단한 웅변이었다. 운전사는 너같이 밤늦게 술마시고 다니는 녀석은 이런 좋은 말씀을 듣고 회개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거의 맹신적인 신도에게 말대꾸를 해주었다가 토론을 하자고 붙잡는 바람에 집에 다 가서도 택시에서 내리지 못하고 혼이 난 경험이 생각나 한마디도 건네지 않고 버텼다. 30여분 동안 철저하게 고문을 당한 셈이었다.

택시를 타다보면 이런 강제전도형 운전사를 간혹 만나게 된다. 자신이 교양을 받으러 갔을때 사온 뻔한 내용의 테이프를 틀어주는 사람도 있다.

두번째는 승객무시형. 택시 뒷유리에는 「깨끗한 택시 친절한 기사」따위의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친절은 그만두고 행선지를 댈때 알았다고 대답이나 해주면 다행이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내가 택시운전이나 하는건 다 너 때문이야』하고 말하는듯 골이 나있고 불평불만이 많으며 욕도 잘한다.

또 다른 유형은 친절위장형. 이 유형은 적당히 승객의 기분을 맞춰주면 웬만한 거스름돈은 안받는다는 것을 잘아는 계산형이다. 『같은 방향이면 좀 모실까요』하고는 대답도 하기전에 『고맙습니다』하기 일쑤이며 배도 안고픈지 시국이 어떻고 국제경제가 어떻고 쉴새없이 말을 걸어 다른 승객들로부터 들은 얘기를 옮기느라 바쁘다.

승객을 피곤하게 만들기는 모두 마찬가지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제돈을 내고 타는 승객들이 운전사의 비위를 거스를 세라 『그럼요 그럼요』하고 맞장구를 쳐주는 일이다. 우리 시민들은 빈 택시를 보고도 행선지를 말한 뒤에야 탈만큼 횡포에 길들여져 있다.

시민여러분 빈 택시는 무조건 그냥 타십시오. 안간다는 이유가 정당하지 않거든 당당하게 항의하십시오. 그리고 섣불리 맞장구를 쳐주지 마십시오. 그피해는 다른 승객들에게 돌아갑니다. 운전사들이 우리를 길들이듯 우리도 운전사들을 길들여야 합니다. 제말이 틀렸다고 생각되거든 이 글을 한번 더 읽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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