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벌로는 한계… 자정운동등 심층 대책을전직 도지사를 비롯한 고위직 공직자들이 연이어 구속되는 등 서릿발같은 사정의 회오리가 관가를 휩쓸고 뒤이어 정가마저 아연 긴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강력한 사정의지의 표명에도 불구하고,하루하루의 삶의 현장에서 관료부패의 심층구조를 감지하고 아울러 전환기마다 불어 닥치는 일과성 숙정 선풍에 이미 익숙해진 대부분의 국민들은 실로 반신반의의 심경으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흔히 공직사회의 부패는 빙산에 비유될 때가 많다. 밖으로 드러난 부분보다 은폐된 부분이 더 크고 깊숙해서 도시 접근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그것은 환부를 도려내는 외과적 수술로써 완치가 되지 않는다. 고위공직자 몇명을 잡아들임으로써 관료사회에 경종은 울릴지언정 부패가 근절되지 않는 소이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지고 보면 페레스트로이카를 추구하는 고르바초프의 최대의 적은 바로 그의 장중에 있는 부패하고 화석화한 당ㆍ국가 관료제이며,코라손ㆍ아키노의 민주개혁의지를 좌절시키는 장본인 역시 철저하게 도덕적으로 타락한 필리핀 관료제인 것이다.
관료부패는 공직사회내에 미만된 일종의 문화현상이다. 따라서 관료들은 공직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그날부터 알게 모르게 부패문화를 학습하고,끝내 그것을 내면화,체질화한다. 시간과 더불어 부정과 비리에 대한 죄의식이 마비되고 오히려 이를 당연하게 받아 들인다.
그러기에 사정회오리에 대한 이들의 한결같은 반응은 「털어서 먼지 안나는 놈이 어디 있느냐」는 것이다. 부패문화는 사직당국의 서슬이 시퍼럴 때는 한껏 움츠리나 그선풍이 지나면 다시 고개를 치켜든다.
어느 사회에서나 관료부패는 그 사회의 정치내지 사회문화적 환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부패하고 부도덕한 정권은 관료부패의 최상의 온상이며,윤리적 기반을 상실한 천민형 자본주의는 공직부패의 최대의 유인이다. 부당한 청탁과 뇌물수수가 일상화된 비도덕적 시민문화의 터전에서 염직한 관료문화가 싹틀 수 없음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관료부패는 정치문화의 투영이며,그 자체가 행정현상인 동시에 사회 현상인 것이다.
그 결과 관료부패는 먹이사슬처럼 구조화되어 있는 것이 상례이며 그 때문에 부패를 유인하는 정치적,사회ㆍ문화적 환경의 정화없이 공직부패를 근절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정회오리가 일과하면,곧 뒤이어 쏟아지는 압력과 청탁,그리고 각종 유혹의 손길은 이미 부패문화에 길들여진 공직자의 심신을 다시 흐트려 놓는다.
우리의 경우 60년대 이후 오랜 권위주의 정치의 그늘아래 급속한 근대화를 추진하는 과정 속에서 관료부패는 공직사회내에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무엇보다 정치적 민주주의의 결손은 행정부에 대한 적절한 민주적 통제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입법부는 행정부가 입안한 법률안을 통과시키는 「통법부」로 전락했고,정당 이익집단 및 언론은 그야말로 형해화되어 그 어느것도 제구실을 변변히 해내지 못했다. 통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게 마련이다.결국 관료사회는 절대권력의 비호아래 거대한 공룡으로 또 복마전으로 변모해갔고 그 과정속에서 국민은 행정의 객체로서 소외되어 버렸다. 그런가 하면 60,70년대의 이른바 개발연대를 풍미한 근대화의 격류는 「어떻게든지」「무슨 방법을 써서라도」「하면 된다」는 식의 목적편향주의를 확산시켰고 근대화의 견인차로 등장한 발전주의 관료제는 그 행정이념으로 능률성과 효과성을 표방하며 민주성과 사회적 형평성을 과도하게 평가절하했다.
그결과 목적과 능률을 위해서는 이도저도 가리지않는 몰도덕적심성이 행정관료제와 사회전반에 침투,확산 되었다. 권위주의와 발전주의의 결연은 정경유착을 구조화시켰고 관료부패를 만성적 병리현상으로 고질화시켰다. 우리 사회내에는 아직도 관료부패를 근대화를 추구하는 개도국의 필요악정도로 호도하려는 시각이 없지 않다.
이처럼 공직사회의 부패는 그 뿌리가 깊고 질기다. 따라서 특명사정반의 이른바 「기획내사」로써 그것이 척결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물론 정부의 강력한 사정의지는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나 그것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우선 대통령에게 직접 책임을 지는 특명사정반이라는 가외구조의 출범 자체가 기존 사직구조의 능력과 신뢰성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되었다면,이는 매우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무엇보다 관료부패가 이처럼 호맹에 이르게된 까닭과 경위를 바르게 인식하고 실로 자성적 입장에서 공직사회의 정화를 위한 보다 종합적 전략을 구상하지 않으면 안된다.
앞으로 우리사회의 민주화의 진척은 공직사회를 청정하게 가꾸는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의회ㆍ정당ㆍ이익집단이 제 구실을 하고 언론이 눈을 밝히면,그리고 여러 생활영역에서 시민운동이 기운차게 전개되면,행정의 투시성과 책임성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공개성과 참여를 요구하는 민주화의 외압은,관료제 특유의 폐쇄성,특권의식,비밀주의,번문욕례,그리고 무사안일주의가 설 자리를 때로는 서서히,또 때로는 무참하게 빼앗아버릴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가장 기대하는 것은 참된 시민의식의 발양이다.
아울러 중요한 것은 이도를 바로 잡기 위한 정부 및 관료제 자체의 끈질긴 노력이다. 무엇보다 공익과 공무원의 윤리적 책임을 강조하는 도덕적 기풍이 공직사회내에 진작될 필요가 있다. 이제 행정이념의 축도 능률성과 효과성에서 민주성과 사회적 형평성으로 옮겨가야될 시점에 있는 것이다. 여기에는 정치지도자의 결단과 지속적 관심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공무원 하나 하나가 비판적 자의식을 키우는 일이다. 부패한 조직문화의 수렁속에서 벗어나서 자신과 조직 그리고 시민모두에게 책임을 질 수 있는 윤리적 주체로서 자신을 새롭게 세우는 일이 그것이다. 이를 위하여는 조직에의 충성을 앞세우는 공무원 교육체제에 일대 개선이 필요하다.
초월적 기구에 의한 처벌위주의 처방은 그 자체로서 뚜렷한 한계가 있다. 이제 공직문화 자체를 쇄신하기 위한 보다 심층적인 접근이 모색되어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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