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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유물 함북 동관진/출토 55년만에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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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유물 함북 동관진/출토 55년만에 공개

입력
1990.06.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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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2일∼8월말 충북대서/화살촉­돌도끼ㆍ가락바퀴 등 59점/실물없어 구석기유물 여부 논쟁/돌아온 후도 국립박물관서 3년간 “낮잠”오는 7월2일부터 8월31일까지 충북대박물관(관장 차용걸)의 「함북 종성 동관진유적출토유물전」을 통해 출토유물이 국내 첫 공개되는 동관진유적은 우리나라 선사고고학계에 첫 보고된 구석기유적지. 1935년 일본인학자 덕영중강 직량신부에 의해 발굴되어 조사보고서가 나왔으나 그 출토유물의 소재지가 알려지지 않았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한반도 구석기연구사에서 이 유적지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되어 왔는데 이번 공개를 계기로 새로운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발굴 55년만에 첫 공개되는 이번 동관진 유물은 일제 말기부터 6ㆍ25를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파란의 한국 현대사가 얽혀있으며 발굴계기부터 비극적이다. 1932년 7월 일본이 만주공략을 위한 철도부설을 위해 종성군 상삼봉 산허리를 파헤치자 코뿔소뼈와 이빨등이 출토됐다.

이 소식을 접한 삼위삼 경성제국대 예과교수가 처음 현장을 찾았으며 이어 당시 외무성 문화사업부 협조로 1935년 만몽학술조사단의 덕영중강 직량신부등이 참여,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졌다. 이들은 각각 그 발굴결과를 「두만강연안동관진발굴물조사보고」 「조선동관진발굴 석기시대/유물」이란 보고서로 발표했다.

이들은 유적지 표토층에서는 신석기시대 유물이 교란된 상태로 출토되었고 표토및 제1황토층에서 하이에나ㆍ털코끼리ㆍ코뿔소ㆍ사슴ㆍ들소 등의 뼈화석이 흑요석으로 된 석기및 뼈연모와 함께 발굴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들은 표토밑 유적층에서 뼈화석과 흑요석이 나온 만큼 이 유적지를 구석기로 보았다.

그러나 당시 일본에서도 구석기유물이 출토되지 않은 상황에서 일본문화가 한국문화보다 앞선다는 학설을 주장해온 고고학자 등전양책매원말치등은 이 유적지 층위등이 철도공사때 교란되었다고 주장,직량신부등의 발굴은 일종의 흩어진 유물을 수습한 것에 불과하다며 구석기유적지 발굴을 부인했다.

일본인학자들의 식민지사관에 의해 역사적 희생물이 된 동관진유적은 1958년 미 하버드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고 돌아온 김정학교수(당시 고대박물관장)가 「한국에 있어 구석기 문화의 문제」란 논문에서 이 유적지를 인정,역사표면위에 떠올려진다.

이후 1963년 북한 학자들에 의해 함북 웅기 굴포리에서 구석기문화층,64년 손보기교수(당시 연대박물관장)에 의해 공주 석장리에서 구석기유적이 잇달아 발견돼,35년 제기된 한반도 구석기존재설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김재원씨(당시 국립박물관장)등 국내학자들은 유물을 보지 못한 상태에서 첫 보고된 구석기 유적지 동관진의 가치인정을 보류했으며 다소 부정적이었다.

학계에서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이 동관진 유물이 한국으로 돌아온 사연은 다음과 같다.

1982년 미 워싱턴 스미소니언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던 「한국미술 5천년전」 뒷마무리에 바빴던 동박물관 인류학부 아시아민족관 학예관 조창수씨는 한 미국인의 방문을 받았다.

그는 고종ㆍ순종황제의 옥새등 한국문화재 몇점의 감정을 의뢰했다. 조씨가 『스미소니언에 전시하고 싶다』고 제의하자 그는 자신의 소장품 전부를 최소가격으로 스미소니언측에 넘기겠다고 동의했다. 가격은 7천5백달러선.

그러나 막상 매입을 추진하다보니 문제가 생겼다. 스미소니언이 물건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소장품의 구입경위와 구입액수등이 필요한데 소장자측에서 난색을 표시했다.

원래 이 물건들은 미군병사로 6ㆍ25때 참전했던 소장자가 난리통에 유출되어 나온 유물을 25달러에 사들여 미국으로 가져 온 것인데 이는 외국문화재의 불법반입에 해당된다.

스미소니언은 규정상 불법반출문화재를 사들일 수 없었고 조씨는 궁리끝에 모금으로 이 문화재를 사들여 한국에 되돌려주는 방법을 생각해 냈다. 한국의 문화유산보존에 관심있는 재미교포와 미국인을 대상으로 모은 자금으로 이 문화재를 사들인 조씨는 1987년 6월 직접 서울로 가져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지금 기억으로는 미국인 소장자로부터 한국문화재를 받았을 때 동관진유물은 일종의 「덤」으로 끼워졌다. 나도 구석기 전문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작년 6월 워싱턴의 내사무실에서 단양수양개 구석기유물 복제품을 기증하기 위해 온 이융조교수(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장)를 만나기 전까지 그 유물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87년 한국매스컴도 고종ㆍ순종황제 옥새에만 큰 관심을 두었다』고 조씨는 말했다.

이융조교수는 조씨로부터 동관진유물의 국립박물관 기증사실을 뒤늦게 전해듣고 귀국,금년 3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를 위한 대여를 요청,이번에 동관진유물이 비로소 햇빛을 보게된 것이다.

이 동관진 유물은 1935년 발굴후 서울로 모두 가져와 북한에는 한점도 남아있지 않다. 이 유물은 경성제대 자연표본실과 덕수궁내 이왕가박물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구석기문화층에서 나왔다는 뼈화석은 현재 일본 동경대에 있다.

국립중앙과학관(관장ㆍ김호기)은 오는 10월 대덕신청사이전 개관전시회때 자연사실에 이 동관진출토 뼈화석복제를 전시하기 위해 이승모씨(60ㆍ자연사실 실장)가 동경대측과 교섭을 벌였으나 『오래된 화석의 훼손우려』를 이유로 거절당해 그 화석의 사진만 복사해 전시할 예정이다.

이융조교수는 『동관진 유물이 공개되면 출토된 흑요석과 동경대에 있는 뼈화석을 분석해 이 구석기유적지에 대한 새로운 재해석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최성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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