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철 노동부장관께.어느 덧 올 노사분규 철도 고비를 넘기는 듯 합니다. 21일 현재로 쟁의발생이 총2백45건,그중 35건은 아직도 쟁의가 진행중이라고 합니다만,작년 동기의 쟁의 발생 1천81건,진행중 1백29건에 비해서는 사정이 나아졌다고 할만 합니다. 장관도 한 시름 놓았을 것으로 짐작을 합니다.
그래서,노사분규 못지 않게,어느 면에서는 노사분규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도 있는 문제 한 가지를 장관앞에 제기하려 합니다. 그것은 외국인 노동자해외인력 수입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 문제에 관한 한 우리나라의 처지는 좀 묘한 것 같습니다. 지금 국내에서는 일손이 모자라서 동남아의 값싼 인력을 들여 오자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동남아로부터의 불법취업자가 벌써 1만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있었습니다. 그 한편에서 우리나라는 일본으로 불법취업자를 내보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달 들어 발효한 일본의 개정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송환될 한국인 불법취업자가 1만명은 되리라고도 합니다. 일본이 안고 있는 외국인 불법취업자 20만명의 국별순위는 필리핀,파키스탄,방글라데시에 이어 우리나라가 4위로 되어있습니다. 국제 인력시장에서 우리나라는 수출국이자 수입국인 양면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이런 노동력의 국제이동을 Y=I-T-A라는 공식으로 설명합니다. 공식의 I는 취업소득,T는 여비와 생활비 등의 취업비용,A는 고국에 그냥 있었을때의 소득ㆍ사회적 지위 등이며,Y가 커질수록 노동력 이동의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입니다. 이 공식은 노동력 이동의 요인이 국가간의 소득격차와 경제ㆍ사회적 발전수준격차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구체적으로 본다면 우리나라와 동남아 여러나라는 임금 격차가 1대 3∼5쯤 되기 때문에 Y값이 클수 밖에 없습니다. 일본과 동남아사이에서는 그값이 10배쯤 더 커집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사이의 Y값도 상당합니다. 우리나라가 지닌 국제인력시장에서의 「두 얼굴」은 이로써 설명이 됩니다.
앞의 공식에서 보듯,Y값의 압력은 지금 일본이 가장 심각합니다. 저들의 개정 출입국관리법도 이에 대응하려는 것이겠습니다만,아직은해외인력을 적극 도입하여 일손부족을 덜자는 「개국론」과 이를 반대하는 「쇄국론」의 논쟁이 치열합니다. 그러나 대세는 「개국론」인 듯 합니다. 이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바야흐로 「개국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단계라 할 것이지만,앞으로 우리나라에 대한 Y값의 압력은 더욱 커지고,「개국론」도 더 세차질 것이 틀림 없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는 전철이 여럿 있습니다. 그 하나가 우리나라에서도 광부와 간호원을 데려갔던 독일입니다. 60년대의 독일은 기한부로테이션원칙에 따라 값싼 해외인력을 도입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 취업자가 독일에 눌러앉게 되고 그 숫자가 4백만을 넘어서 새로운 「소수민족」문제를 떠 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특히 문화적 배경이 다른 터키인 취업자의 귀국정책을 세워 83년과 86년 두차례에 걸쳐 귀국보조금등 3백억마르크(약 13조원)이상을 들였으나,불법입국자가 늘어 별 성과를 보지 못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더하여 이 기간중 값싼 인력에 의존했던 독일은 첨단기술 개발을 게을리하여,산업기술면에서 미ㆍ일에 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같은 기간중 출산율이 떨어져 인구감소를 가져 온 것도 궂은 일을 외국인에게 맡겨 버린 사회풍조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뿐 아니라,지금 와서는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독일의 경제나 사회가 제대로 기능할 수가 없을 지경이라고도 합니다.
이와는 다른 예가 싱가포르에 있습니다. 농촌배경이 없는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부족한 일손을 해외인력으로 충당합니다. 대신 독일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엄격한 규제를 강행합니다. 예컨대 가정부로 들어오는 외국여성에게는 결혼금지,임신금지의 조건을 붙인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외국인 취업여성은 6개월마다 임신여부의 검사를 받아야한다고 합니다. 비인도적인 얘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또 외국인노동자는 경기대책의 일환으로 받아들이기도 하고 쫓아내기도 합니다. 작년 4월에는 겨우 3주정도의 유예만을 주고 태국인노동자 1만명의 출국을 명령한 일이 있었습니다. 태국정부는 해군함정까지 보내 이들을 수용,귀국시켜야 했다는 것입니다. 외교분쟁이 생길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런 전례들은,한때 일손이 모자란다고 해서 해외인력을 섣불리 도입할 것이 아님을 잘 보여준다고 하겠습니다. 여기 나타난 교훈들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시한부취업을 전제로 한 외국인 노동자라도 결국은 영주하게 되어 새로운 경제ㆍ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됩니다. 영주제한을 위한 규제조건을 강행하자면 우호국 국민에게 비인도적인 짓을 해야 합니다. 그것은 외교분쟁을 빚어 내고,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이미지를 떨어뜨릴 것입니다. 또 궂은 일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기면 그만이라는 풍조가 사회기풍에 미칠 부정적 영향이 엄청나고,우리나라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악화시켜 새로운 갈등의 꼬투리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이한 외국인 노동자의 도입주장,실제로 성행하고 있는 이들의 불법취업,필리핀가정부의 밀수입등은 그야말로 국가백년대계에 관계되는 중대사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뒤집어 말하면,한때의 일손 부족을 자동기술개발,기술집약산업으로의 탈피,노동조건의 개선,근로기풍의 유지등으로 이겨내는 슬기가 있어야하고,이에서 오는 이익이 엄청날 것임을 지적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노동행정책임자인 장관에게 이 문제에 관한 소신을 묻는 것입니다. 심지어 정부안 몇몇부처까지 해외인력 도입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노동부가 이를 반대하고 있음은 익히알고 있습니다만,앞을 못보는 경제논리가 다른 모든 것을 제압해 온 우리의 행정풍토를 염려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부디 안이한 노동시장 개방으로 백년의 화근을 심는 일이 없도록 노동부장관으로서의 소신을 관철하고,온정부를 움직여서라도 불법취업을 뿌리 뽑을 수 있기를 당부합니다. 문제의 성격으로 보아,이 일은 행정차원이 아니라 정치적 경륜에 속하는 일이라 할 것입니다. 정치인 출신 장관에게 거는 기대가,그래서 더욱 큽니다.<상임고문ㆍ논설위원>상임고문ㆍ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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