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 롱드르(여기는 런던) 국민 여러분에게 고합니다』 18일 새벽부터 19일 새벽까지 파리 콩고드광장의 높이 35m 대형라디오에서는 드골장군이 꼭 50년전 런던에서 BBC방송을 통해 프랑스인들에게 대독항전을 호소했던 내용이 되풀이 방송됐다.게슈타포가 들을세라 온가족이 숨죽여 듣던 그날의 기억이 되살아난 듯 손수건으로 눈시울을 닦는 노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금년은 드골탄생 1백주년,서거 20주년,대독항전호소 50주년이 되는 프랑스로선 뜻깊은 해이다.
히틀러의 침략군에 조국이 유린된 40년 6월17일 페탱원수가 항복하자 국방차관이던 드골은 체포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다음날부터 항전호소방송을 시작했다.
18일의 역사적인 연설은 4분간으로 약 4백자.
나치독일에 국토가 점령됐다고 저항을 포기한 무정부상황에서 그는 방송을 통해 『프랑스의 저항의 불꽃은 꺼질 수도 없고 꺼지지도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었다.
희망과 자부심은 자유을 위한 위대한 저항에 절실한 복음이었다.
그것은 레지스탕스의 불꽃으로 자유프랑스군으로 결집돼 파리를 되찾는 원동력이 되었다.
시인이자 외교관인 폴ㆍ클로델이 그에게 바친 송가처럼 「세계는 프랑스 없이 지낼 수 없었고 프랑스는 명예없이 지낼 수 없다」는 것을 드골은 확인해준 것이다.
드골은 그가 부관으로 있던 페탱원수 정권때 사형선고를 받았었다. 그러나 전쟁은 드골이 말한 대로 모럴의 싸움이었다. 현실과 타협해 나치에 협력한 페탱은 1차대전때의 혁혁한 전공이 아깝게 전범재판에 회부돼 사형언도를 받고 특사되었으나 복역중 죽었다.
오를레앙의 처녀 잔ㆍ다르크처럼 조국을 구출하도록 운명지어진 드골에게 요즘 프랑스의 모든 언론이 조명을 집중하고 있다.
오욕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었던 민족적 자존심이 너무나 소중했기에 TV가 6시간씩 특집을 하고 렉스프레스지가 한 호 전체를 드골 특집에 할애했는지 모른다.
『이 시 롱드르…』 격동하는 유럽속의 프랑스에서 드골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뜨거운 사랑을 반추해 보면서 과연 우리는 민족정기를 세우려는 역사의 청소작업을 제대로 해왔던가 하는 의문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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