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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얼굴 보기/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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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얼굴 보기/임철순 사회부차장(메아리)

입력
1990.06.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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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지하철. 하루의 고된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수면과 안식을 찾아 집으로 돌아간다. 군데군데 비어있는 맞은편 좌석의 승객들은 한결같이 지쳐 풀어져 있다. 제대로 깨어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 같고 모두가 차에 실린채 어디론가 심연속으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풍경이다.문득 고개를 뒤로 돌려 창밖의 어둠을 보려다가 놀라게 된다. 거기 내 얼굴이 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거울속에서 보아온 얼굴인데도 아주 낯설게 느껴진다. 데드마스크같다.

저 얼굴은 이제 종결된 형태인 것인가. 가식과 위선으로 왜곡ㆍ분장된 얼굴,피로와 무기력이 덮여있는 얼굴,냉혹한 진실보다는 따뜻한 기만이 낫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얼굴.

사람들은 누구나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는 혼자만의 얼굴이 있지만 그 얼굴에서 나는 벗어날 수 없다. 갑자기 발견한 나의 얼굴에 나는 직면해 있다.

우리는 자신의 얼굴을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40대 이후의 얼굴에 대해서는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데 사람들은 기만과 가식만의 얼굴을 달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예를 들어 즉각 민주화를 실현하라고 외쳐대는 사람들이나 연말까지 확립하려했던 민생치안을 8월말까지 앞당겨 정착시키라고 지시하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자기기만을 발견하게된다. 민주화나 민생치안확보가 눈금이 그려진 컵에 물을 따르듯 수량으로 측정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언어적 무지가 끔찍스럽다.

이념의 색채가 강하고 조직의 논리가 경색될수록 자기기만은 심해지게 마련이다.

월드컵대회에서도 자기기만의 우리얼굴이 드러났다. 개막식날 아시아대륙을 상징하는 노란의상의 모델들이 흥겹고 선정적인 몸짓으로 입장할때 한국의상은 그 속에 없었다. 서울올림픽 공식가요 「손에 손잡고」가 연주된 것이 고작이었다. 서울올림픽을 세계의 격찬속에 성공적으로 치렀고 그로써 한국의 존재가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고 믿었던 자부는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승객이 차창으로 튕겨져 나가고 실신하는 「지옥철」을 해소하기 위해 서울지하철 5∼8호선을 조기착공하겠다고 생색을 냈던 얼굴들은 뒤늦게 재원문제에 부딪쳐 울상이 되어 있다.

기만과 가식의 얼굴은 도처에서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개인의 기만은 혼자만의 책임으로 끝날 수 있으나 국가나 사회전체를 대상으로한 기만은 국민의 생활과 정신을 오도ㆍ왜곡하게 된다.

일반인들은 물론이지만 정치인,공직자,사회지도적 인사들,남들의 운명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사람들은 곰곰이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 봐야 할 것이다. 그 얼굴에는 진정으로 이웃과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노력하게 만드는 정직과 선의,진실이 한 꺼풀밑에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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