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역에 있어 공정관행은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어려운 여건을 감내하며 우리 시장을 꾸준히 개방해온 것도 이런 관행을 존중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 공정이란 늘 상호간에 공감할 수 있는 타당성을 지닐 때 가장 적절히 기능할 수가 있다.한미간의 무역마찰이 잠잠한 듯하더니 지난 13일 칼라ㆍ힐스 미 무역대표부대표는 우리 박동진주미대사를 불러 호화외제소비품 추방이 수입규제 행위이며 대한 수출부진에 유감의 뜻을 표했다고 보도됐다. 이에앞서 로버트ㆍ모스배커상무장관도 우리 통상사절단에게 같은 내용의 항의를 하며 변호사를 한국에 보내 백화점ㆍ소매시장의 「수입규제 현황」을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그간 많은 무역시비를 경험했고 또 시정되는 것도 보아왔지만 이번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엉뚱한 것 같다. 엉뚱하다기 보다는 부당하다. 뒷걸음질치는 경제와 지나친 수입으로 인한 수지역조,범람하는 값비싼 호화수입품으로 인한 사회의 위화감등에 자극받은 여론이 애써 바로잡은 결과를 고의적인 「수입규제」 「불공정 행위」로 몰아붙인다니 말이다. 이 캠페인이 결과적인 수입감소로 나타났을는지는 몰라도 과소비를 억제하자는 국민적 여론을 「불공정」하다고 볼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본다. 이점 미국측은 변호사를 보내 백화점의 수입품코너를 조사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과소비 추방의지의 시말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할 줄 안다.
이번 경우를 보며 느끼는 것은 미국이 아직 우리 사회의 구조ㆍ사고방식ㆍ민관관계의 메커니즘 등에 대한 기본인식이 잘못되어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이다. 정부의 지시 한마디면 국민의 여론도 좌지우지되고 피우기 싫은 수입 양담배도 사 피우고 하는 국민쯤으로 알고는 있지 않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과소비추방캠페인의 결과로 빚어진 일을 「정부의 지시」 「규제」로 인식하는 데는 적지않게 문제가 있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이런 「오해」를 심어준데는 우리측의 책임도 없지않다. 지난 정권들의 「일사불란」의 통치관행은 어느 새 그것을 배격하는 외국인에게까지 편리할 때는 써먹을 수 있는 수단으로 인식케 했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경우는 비단 이번만이 아니라 지난해 6월 자몽의 유해시비때도 비슷한 현상으로 나타났었다. 유해문제의 제기는 우리 소비자단체에 의한 것이었는데도 미국측 일각에는 아직도 정부의 작용에 의한 것이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은 이번 경우와 같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유사한 경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레이건행정부시절 미ㆍ일간의 고조된 무역마찰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하게 된 당시 나카소네 일 수상이 출발전 미국 TV와의 인터뷰를 통해 미국 세일즈맨의 좀 더 적극적인 판매전략을 강조해 미국 관련업계에 자극을 줬던 일이 있다.
우리나라 시장개방률은 국내적인 반대여론과 해당산업의 피해를 감수하면서 89년 95.5%에서 올해엔 96.4%로 폭이 넓어졌고 공산품의 경우는 89년 99.5%에서 올해 99.7%로서 다른 나라에 비해 별 손색없이 우리 시장은 개방돼 있다. 그리고 이런 추세는 국제적 무역여건으로 봐 더 확대되어 나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무역은 시장의 개방정도가 아니라 치열한 판매전략이고 최종 판가름은 소비자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란 점점 제한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미간의 무역마찰은 적절히 해소되어야 하고 더욱이 「오해」에 의한 마찰이 있어선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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