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미국문화원이 다시 문을 열자마자 화염병이 날아들었다. 개관식 광경과 운동권학생들의 화염병 세례가 오버랩되는 것을 보면서 다시금 시대의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친과 반의 감정은 종이 한장 차이에 지나지 않는다. 너그럽게 이해하면 풀릴 수도 있으련만,한이 맺히면 간격은 논리를 뛰어넘어 벌어지게 마련이다.
반미의식이나 반미감정은 제5공화국 탄생 전야에서 가열되기 시작하여,운동권학생을 중심으로 미국문화원이 표적이 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그 이후 진실규명이 뒤처지면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세월이 흘렀다. 명확한 해답이 좀더 일찍이 있었다면 오늘의 사태는 벌써 해소됐을 수도 있었으리란 아쉬움이 없지않다.
광주 미국문화원은 불행하게도 대미감정의 시련이라는 대상으로 부각되면서,잠정폐쇄와 재개원이 주목되었다. 그리고 다시 장소를 옮겨 문을 열자 화염병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솔직한 의견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친미ㆍ반미이거나 중립적이든 그것은 개인의 생각과 감정의 독립이 존중받아 마땅하다. 그것은 어떤 제약도 받을 수 없다. 다만 우리가 문제삼고자 하는 것은 표현의 형태이다. 감정이나 사고의 대결은 논리로 해결함이 가장 바람직하다. 여기서 이겨야 진짜 승자가 될 수 있다.
이런 뜻에서 반미를 화염병이나 폭력으로 표현하며 목적달성을 꾀한다는 것을 우리는 동의할 수 없으며 지지기반의 구축도 어렵다는 것을 강력하게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경계게하고 기피할 것은 자폐주의 성향이다. 국내외의 변화는 상관없다는 식으로 자기주장의 확산만을 기도하다 보면 스스로도 모르게 우물안 개구리 신세가 되고 만다. 외부의 영향이 싫다고 웅크리고 있으면 쇄국의 과오를 범할 수밖에 없는 것이 국제사회의 현실이다. 자존은 밖을 향한 배격이 아니라 오히려 밖을 수용하는 능력에서 배양되는 것이다.
이념과 체제의 대립과 갈등이 풀려가는 이 마당에,우리는 우리의 자존을 위해서 남을 존중하며 그만한 대가를 받아들일 자긍의 노력을 앞세워야 할 것이다.
무모한 폭력투쟁은 야당정치권에서도 반대하고 재야의 양식도 수긍하지 않음을 주의깊게 살펴보기를 권하는 바다. 남을 알고 나를 알면 이긴다는 철리를 애써 부정할 까닭이 없을 줄 안다.
우리는 「광주의 심정」을 전 민족적으로 이해하고자 한다. 그래서 정치권에 대해 정파의 이익을 초월한 치유의 길을 모색할 것도 수없이 촉구해왔다. 정치가 할 일을 못하니 이 지경에 이른 것을 자괴해야지,문화원에 화염병을 던지는 일로 이 문제를 「격하」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이제 화염병은 유물화시켜야 마땅하다. 테러리즘은 명분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파괴를 가져올 따름,창조와 건설의 길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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