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36년 피맺힌 한은 어디에나… /보자마자 “할머니” 목메어/손발 주물러주며 병간호/자식들은 가출… 소식없어일제36년의 피해자들만이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오욕의 역사와 그 아픔을 절실하게 안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에게는 원폭피해자의 고통이 곧 자신의 고통일수밖에 없었다.
지난달23일 일왕의 사죄를 요구하며 할복기도했던 독립운동가의 후손 김국빈씨(33ㆍ경기 광명시 철산동 주공아파트 1301동705호)가 지난11일 원폭피해보상을 요구하며 음독한 이맹희씨(65ㆍ여ㆍ서울 구로구 독산동 987의4)의 병실을 찾아 동병상련의 위문을 했다.
퇴원한지 1주일밖에 되지않아 아직도 몸이 성치 않은 김씨는 12일 하오1시20분께 서울 종로구 재동 한국병원에 찾아와 친어머니를 보듯 눈시울을 붉히며 안타까워했다.
김씨는 자신이 할복기도한지 19일만에 똑같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음독자살을 기도,혼수상태를 헤매고 있는 이씨의 「죽음보다 못한 삶」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이씨의 병실은 김씨가 입원치료를 받았던 230의2호실 바로 옆인 230의3호실. 신문을 보고 이씨의 사연을 알게됐다는 김씨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의식이 없는 이씨를 붙들고 『할머니 정신차리세요』하고 목이 메어 불렀다.
이씨는 11일하오 응급실로 옮겨져 위세척 등 응급처치를 받고 한동안 의식을 찾았으나 12일 상오10시께부터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김씨는 병상에 붙어앉아 땀을 닦아주고 손발을 주무르며 『내 치료비 60여만원은 보훈처에서 전액지급해 치료를 마칠수 있었는데 할머니도 그런 길이 있었으면 좋겠다』며 『만약 그렇지 못하면 내가 받은 성금으로 치료비를 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는 『답지한 성금을 흥사단에 기부,독립유공자들을 위한 사업에 쓰도록 할 계획이었으나 할머니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씨의 주치의인 윤현구 내과2과장(34)은 이씨의 상태에 대해 『약물치료를 하고있으나 나이가 많아 10여일정도 경과를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이씨는 원폭피해자협회(회장 신영수ㆍ73)가 보내준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을뿐 가족ㆍ친지의 문병도 없이 누워 있다.
이씨가 낳은 7남매중 살아남은 자식이 5남매나 되지만 막내딸(23)은 정신질환자,나머지 4남매가 가출해버린채 어미니의 비극을 알지도 못하는 것 같다.
김씨는 수간호사 최영옥씨(30) 등 입원기간에 낯이 익은 간호사들에게 할머니를 잘 보살펴줄 것을 신신당부 했다.
그러면서 김씨는 『일제36년의 피해자에 대한 정부당국과 일본의 성의있는 자세가 아쉽다』고 말했다.
김씨는 할아버지 당헌 김붕준선생(6ㆍ25때 남북)이 임시정부 의정원의장을 지냈고 아버지 덕목씨(77년작고)가 항일비밀결사인 남의사단원으로 활동하는 등 가족6명이 헌신적으로 독립운동한 집안의 후예이다.<이재열기자>이재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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