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대한 빈민층의 기대감이 승리요인/살인적 인플레등 난제 산적… 앞날 먹구름「사무라이의 쿠데타」「일본으로부터의 해일」로 표현되는 일본계 2세 알베르토ㆍ후지모리(51)의 페루대통령 당선은 남미전역에 엄청난 정치적 충격을 던졌다. 그러나 정작 페루의 일본인들은 착찹한 심정으로 그의 승리를 바라보고 있다.
지난 4월8일의 1차투표 직전까지만해도 지지율 1%내외를 맴돌던 후지모리의 기적같은 당선은 정책보다는 경쟁자인 바르가스ㆍ요사(54)의 선거전략 실패와 경제대국 일본에 대한 페루빈민층의 터무니없는 기대심리가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번 선거의 최대쟁점중 하나였던 경제난 해결을 위해 요사후보는 국영기업의 민영화와 긴축정책을 통해 연간 2천%에 달하는 인플레와 2백억달러의 외채문제를 해결하겠다고 공약했다.
반면 후지모리는 2차투표를 불과 1주일 앞두고야 국영기업의 민영화반대,의무교육실시 및 정부보조금 지급 등 요사의 공약을 거꾸로 뒤집은 정책을 제시,70%에 달하는 잠재적 실업자와 30%의 극빈층으로부터 막판 지지를 획득했다.
지난 80년부터 10년간 1천8백명의 인명과 1백60억달러의 재산을 앗아간 내전종식에 대해서도 요사가 모택동노선을 추구하는 게릴라단체인 「센데로 루미노소(빛나는 길)」의 완전소탕을 공약한 반면,후지모리는 『군사행동외에 정치적 타협을 모색하겠다』는 어정쩡한 입장을 취했다.
게릴라조직을 중개역으로 해 콜롬비아마약카르텔에 코카잎을 공급하던 재배농가를 겨냥한 것이다.
아무튼 후지모리의 이같은 「무정견」은 쿠바혁명을 찬양하던 사회주의자에서 가진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주의자로 돌변한 요사의 기회주의적인 태도와 대비돼 기존정당ㆍ정치인의 공약에 식상해온 유권자들에게 오히려 신선미를 심어주었다.
그러나 상대방의 실책만을 지적한채 모든 문제를 미해결로 남겨두었다는 점에서 후지모리의 앞날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우선 우려되는 점이 일본의 경제적 지윈에 대한 하층민들의 턱없는 기대감이다. 선거전 페루의 빈민층사이에는 후지모리가 당선될 경우 집집마다 도요타 자동차와 소니 가전제품을 갖게될 것이란 「복음」이 널리 퍼졌었다.
심지어는 후지모리의 생일과 대통령취임일이 바로 페루의 독립기념일인 7월28일이란 우연의 일치도 「후지모리 신화」를 채색하는데 큰 몫을 했다. 이 때문에 황화론을 상기시켜 후지모리에게 타격을 가하려던 요사측의 선거전략도 역효과를 냈다. 민영 TV들은 「콰이강의 다리」「도라 도라 도라」 등 2차대전 영화들을 재방영해가며 반일감정을 부추겨 곳곳에 일본인들에 대한 테러까지 발생했다. 하지만 인디오(47%) 혼혈 메스티조(40%) 등 2천1백만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백인계 하층민들은 『스페인 식민통치 시대부터 수백년간 우리를 탄압해온 백인보다는 일본인에게 표를 던지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도 8만여명으로 추산되는 페루의 일본인들은 일본의 경제지원이 페루국민들의 기대수준에 못미칠 경우,2차대전중 팽배했던 반일감정이 되살아나 후지모리에 대한 원성과 비난이 자신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표출될 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그들의 모국인 일본으로서도 만신창이의 페루경제회복에 결코 무관심할 수만은 없는 곤혹스런 짐을 나누어지게 됐다.【김현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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