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가깝게 분단상태에서 살아온 우리에게 「냉전청산」의 움직임만큼 충격적인 사건은 드물 것이다. 동유럽 공산권의 와해는 그래서 세계의 어느 민족에게 보다도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또한 샌프란시스코회담에 흥분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구조의 해체가 우리의 성급한 희망대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냉정히 바라봐야 할 것이다. 서울모스크바관계도 그렇지만,서울북경관계는 북경평양관계나 천안문사태이후 중국의 국내사정으로 볼 때 상당히 참을성이 있어야 된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한때 중국여객기가 납치돼 우리 땅에 불시착했던 때로부터 녹기 시작한 서울북경관계는 86년의 서울 아시안게임을 계기로해서 급속히 진전되는 듯했다.
그러나 천안문사태이후 북경평양관계가 다시 굳어지면서 서울북경관계는 다시 식어갔다. 오히려 서울모스크바관계가 영사처 교환으로까지 발전했는데도 서울북경관계는 침묵을 지켜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경 아시안게임이 서울북경관계의 발전에 좋은 디딤돌이 되리라는 것이 우리측의 일방적인 「희망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할 만한 근거는 결코 과소평가될 일이 아니었다. 지난 4월 모스크바에서 열린 중소 외무장관회담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남북한의 대화를 촉구하는 데 합의했었다.
최근의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중국정부 대변인은 『남북대화 촉진과 한반도의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는 일은 환영한다』는 식으로 「간접적인 환영」을 표명한 것으로 보도됐다.
우리가 「희망적 낙관」을 할 만한 이런 움직임과는 달리,중국은 세계적인 냉전청산 추세로 볼 때 상당히 「실망스런」 제의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올 9월로 예정돼 있는 북경 아시안게임에 대비해서 서울과 북경에 무역사무소를 개설하고,무역사무소에서 『비자발급등 제한된 영사업무』를 맡도록 하자는 제의를 해왔다는 것이다.
한해 왕복무역이 31억달러(89년)나 된 교류관계에 비추어 볼 때 중국측의 제의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중국이 다짐한 것처럼 남북한의 대화를 촉진하고,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공식 무역대표부도 또한 공식적인 영사기구도 아닌 무역사무소만 교환하자는 제의는 납득하기 어렵다.
소련에 한발 앞서 우리와의 교류관계를 튼 중국이 천안문사태이후 거꾸로 뒷걸음쳐온 것은 중국의 국내정치와도 관련이 있는 부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길게 볼 때 중국이 결국 우리측과의 관계발전에 긍정적으로 나올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냉전청산은 중국의 집안형편과 관계없이 어쩔 수 없는 대세로서 동북아의 국제정치질서를 개편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북대화 촉진과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해 한발 뒤늦게나마 서울모스크바 관계수준의 교류,다시 말해서 공식 영사관계 수립을 주저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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