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 개최이후 소련측의 「공식」반응을 지켜보면서 소련이 이번 회동을 「평가절하」하려 애쓰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소련측의 공식반응만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역사적」이라는 회담은 「속빈 강정」,「외화내빈」이라는 극단적 평가마저 불러일으킬 만하다.
사실 일련의 소련 반응은 회담당일 노태우대통령을 1시간가량 기다리게 한 의전상의 「결례」도 다분히 의도적이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짙게 한다. 고르바초프는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에 대해 단 4마디로 언급하는 데 그쳤다. 그것도 한소가 통상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중이 고려한 끝에 회담에 응했다는 식이었다.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도 열매가 익으면 따먹게 될 것이라는 추상적 표현으로 대신했다.
이고르ㆍ로가초프 소련외무차관은 7일 말레이시아에서 노ㆍ고르비회담때 한소가 외교관계를 수립키로 합의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곧바로 『향후 외교관계 수립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사족을 달긴 했지만 우리측의 발표내용을 전면부인한 셈이다. 같은날 모스크바의 반중립 통신인 인터팩스는 고르바초프 측근의 말을 인용,양국간 외교수립,양 정상의 상호방문계획등은 「전혀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물론 소련측의 공식반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소련의 거듭된 평가절하가 오히려 두 정상회동의 「역사성」과 내외에 끼친 파장을 입증하는 것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련의 비공식적 평가를 살펴보면 이러한 견해는 한결 설득력을 갖는다. 노보스티통신은 한소 정상회담의 의미에 대한 소련학자의 기고를 통해 이번 정상회담이 소련 외교정책의 주요 돌파구였다고 큰 의의를 부여하고 있다. 또한 『소련이 남북한문제에 대해서 완고한 평양측을 「무마」하려들기보다는 스스로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대로 행동키로 결정한 것 같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따라서 소련 내부의 평가와도 어긋나는 일련의 평가절하식 공식반응은 한소수교가 동북아 질서개편을 시도하기 위한 소련의 여러 카드중 하나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소련은 40여년이상 적대국으로 지내온 나라의 정상과의 회담에 응함으로써 내외에 충격을 던져주고,또 한편으로 이를 평가절하하는 이중적 태도로 동북아 질서개편을 위한 외교게임을 전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소정상의 만남은 북방정책의 끝이 아니라 「진정한」 대소관계의 시작일 뿐이라는 한 학자의 지적은 우리 정부로서도 충분히 유념해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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