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한 「소 환상」 경계해야/북 대미ㆍ일 접촉 후원필요/남북 체제유지적 통일정책 수정을… 중국도 북 개방 영향줄 듯노태우대통령의 「외교쿠데타」로 불리는 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남북한관계는 물론 동북아 신질서 형성에 광범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정상회담이 향후 남북한관계및 기타 관련국에 미칠 파장을 조영환교수 (미 애리조나 주립대)와 이만우교수 (미 펜실베이니아 밀러즈빌대)간의 좌담을 통해 짚어본다.【편집자주】
□참석자
조영환교수 <경남대ㆍ극동문제연구소장 (미 애리조나 주립대ㆍ국제정치학)>경남대ㆍ극동문제연구소장>
이만우교수 <미 펜실베이니아 밀러즈빌대ㆍ〃>미>
▲조영환교수=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은 회담의 성과 그 자체보다는 회담이 개최된 시기에 더욱 큰 의의를 부여해야 할 것 같습니다. 북한이 체제개혁의 기로에 서있는 시점에서 이루어진 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북한당국에 「7ㆍ7선언」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개방압력으로 작용할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천안문사태이후 내부문제에 골몰하느라 대한 관계개선에 미온적이었던 중국지도부가 더이상 소극적인 자세로 안주할 수 없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효과도 갖게 될 것입니다.
좀더 시야를 넓혀 본다면 이번 회담은 일북한관계,일소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동북아 안정및 남북한 관계개선에 큰 도움을 줄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한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양국정상이 만났다고 해서 한소수교가 당장 이루어지고 곧바로 남북한 긴장완화로 연결되는 것인 양 들떠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만우교수=이번 한소 정상회담은 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올 것이 온 것」입니다.
지난 76년부터 15년동안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온 한소간의 조그마한 교류들이 쌓여서 4일의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이번 회담은 그 상징성만으로도 충분한 의의가 있다고 봅니다.
한국도 주권국가로서 완전한 자주외교를 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다는 것을 세계에 과시했고 분단의 또다른 당사자와 대등하게 만났다는 역사적 상징성만으로도 이번 회담에 후한 점수를 주는 데 인색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소련과 한국과의 공식관계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영사처가 이미 개설됐고 적지않은 인적 교류가 있었지만 한국과 소련은 서로 상대방을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소련은 한국의 발전모델이 소련의 경제개혁 추진에 적용될 수 있을 것처럼 여기고 또한 시베리아개발에서 한국이 일본을 상당부분 대신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한국 역시 소련에 대해 낭만적인 환상을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소련과의 관계만 개선되면 남북한 문제는 저절로 풀릴 것이라는 사대주의적 사고에 혹시 사로잡히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개혁이 됐다고는 하나 소련의 관료주의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뿌리가 깊습니다.
소련에 다섯번 갔다왔는데 갔다올 때마다 실망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뿌리깊은 관료주의때문입니다. 정상이 만났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한꺼번에 풀리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관계개선에 따르는 수많은 걸림돌이 우리앞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조=단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노태우고르바초프회담은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한소 정상회담이 기정사실화된 이상 북한도 이를 인정 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우선 북한의 신경이 곤두설 것이 분명한 이상 한국정부는 이를 감안,북한을 자극하지 않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북한의 대미접근과 일본과 북한간의 관계개선을 적극 후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한소관계가 비약적으로 발전한다고 해서 미국과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급진전되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학술교류등 민간차원의 접촉이 늘어날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미 상무부에서도 북한과의 제한적인 통상을 위한 검토작업이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북한도 변화하고 있고 이러한 미세한 변화의 축적은 보다 큰 질적 변화를 유발시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남북한 문제에 있어서 미소 등 4대강국의 영향력은 50년대처럼 강력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남북한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궁극적으로 남북한 당사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한소관계 개선과 미ㆍ북한 관계개선이 남북한 문제해결에 미치는 영향력에는 한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소련의 결심여하에 따라 통일작업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독일과 우리는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남북한관계를 미국과 캐나다처럼 국경이 있는 듯 없는 듯 만든 연후에야 통일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 제 견해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한간의 다방면에 걸친 교류가 선행돼야 하며 쌍방 모두가 체제유지적 통일정책을 수정해야 할 것입니다.
▲조=남북한간의 문제가 4강보다는 양 당사국에 달려있다는 견해에는 저도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고르바초프가 한소 정상회담에 응한 데는 북한을 개방시키려는 데에 상당한 뜻을 두었다고 생각합니다. 공산권의 개혁과 동서 해빙무드에 동참하기를 거부한 북한은 최근들어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조총련계 학자 1백여명이 북한의 핵개발에 참여하고 있고 뉴멕시코 로스알라모스의 핵연구소에 근무하던 한 재미학자가 북한 핵개발의 책임자가 됐다는 정보도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을 위해 동북아의 평화를 원하고 있는 고르바초프는 크라스노야르스크선언이후 지난 2년동안 북한에 정치ㆍ군사적 압력을 가해왔지만 북한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는 이번 회담을 통해 우회적인 방법으로 북한에 경고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한편 고르바초프는 이면적으로는 부시와의 회담에서 북한이 핵개발에 나선 이유를 대신 설명했을 수도 있습니다.
남한지역에 배치된 핵무기를 감축할 경우 북한의 핵개발을 보다 손쉽게 저지할 수 있지 않느냐는 제안을 했을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습니다. 소련이 한소 정상회담에 응하는 대가로 미ㆍ북한간의 접근을 종용했을 가능성도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의 가시적 양보조치가 있게 되면 미국의 대북한 무역제재조치 철폐가 뒤따를 가능성은 아주 높은 것입니다.
▲이=고르바초프가 대소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북한을 개방시키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기 보다는 소련 자체의 경제적 필요성때문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한국과의 경협증진을 통해 북한의 개방이라는 부수적인 효과를 노렸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소련의 주목적은 경제적 실리를 얻자는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북한을 개방하는 일은 상당부분 우리 몫이라고 여겨집니다. 대규모 차관제공설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소련과의 경협과정에서도 북한을 간접적으로 도울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를 살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조=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관심이 큰데 저는 중국이 천안문사태이후 보수화됐다고 하나 「경제개방」이라는 대원칙에는 조금도 후퇴가 없었다고 봅니다. 따라서 중국도 북한을 개방시키는 데 노력할 것으로 저는 확신합니다.
▲이=한소간의 관계개선은 우리측으로 볼 때는 정치적인 목적과 경제적인 목표가 중첩되어 있습니다. 두 마리의 토끼를 쫓는 입장에서 우리는 단기적인 손익계산에 너무 얽매이지않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조=한소 정상회담은 지난해 동구에서 일어났던 대변혁과 마찬가지로 몇년전만 해도 전혀 예측할 수 없었던 역사적 사건입니다. 도저히 변화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북한에도 2∼3년내에 큰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으로 저의 결론을 대신할까 합니다.<정리=유동희기자>정리=유동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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