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벌이고 보자”ㆍ삼성 실무인맥확보/럭금 계속신중ㆍ대우 공세서 실리전환대소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기업들은 이익추구라는 목표에선 일치하지만 그 방법에 있어선 각양각색이다. 어떤 기업들은 너무 서두르는듯 하고 어떤 기업들은 지나치게 신중한 것이 아니냐는 인상을 주지만 다들 제나름대로 자기류의 포석을 전개하고 있다.
기업들의 대소진출전략을 보면 각기업의 특징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진출을 모색하는 단계에서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과정에까지 그 기업의 성장과정에서 굳어진 특징들이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일부 기업들은 그 기업의 생성과정을 재현하는듯 비슷한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 이때문에 재계에선 기업의 특징을 알려면 소련진출에 임하는 기업들의 전략을 보면 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다.
현대그룹은 정주영 명예회장이 스스로 대소진출을 전면에서 진두지휘하고 있기때문이기도 하지만 거의 무모하리 만큼 일단 일을 벌여놓고 수습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해외건설시장 개척시대를 재현하는 듯하다. 사업의 규모도 실현이 가능할까 의문이 생길 정도로 황당하리만큼 거대하다. 천연가스개발 및 가스관공사,산림자원개발,석탄개발,석유화학단지건설등 모두가 굵직굵직한 것들이다.
현대는 대소창구는 현대종합상사로 단일화되어 있지만 구체적인 업무추진은 현대건설이 맡고 있는것에서 나타나고있듯 시베리아의 자원개발과 건설사업,이 지역개발을 위한 기반시설공사참여에 중점을 두고있는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가 당장 실현성이 의문시되는,실현되더라도 장기간이 소요될 덩치 큰 프로젝트들을 거리낌없이 추진하고 또 발표하는 것은 나름대로 고도의 전략에 따른것이라는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룹의 주력기업인 현대건설이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야 할 시점에 와있고 그 개척지가 소련이라는 것이다. 건설이 시베리아에서 기반을 잡으면 원유ㆍ가스등의 수송으로 해운ㆍ조선이 살고 플랜트사업이 활기를 되찾는등 파급영향이 막대하다고 보고있다. 이에따라 추진가능한 사업들을 닥치는대로 입질함으로써 여타기업들의 참여를 봉쇄할수도 있고 사업이 본격추진될때 한소양국정부에 대해서도 기득권을 주장할수 있다는것.
워낙 덩치 큰 사업들을 추진하다보니 겉으로는 가장 적극적으로 대소진출에 나서고 있는 것같지만 실적은 미미하다. 대소교역의 원년이라고 할 수 있는 88년의 수출실적이 전무하고 89년에도 교역규모가 전체 대소교역량(6억달러)의 2.2%인 1천3백만달러에 지나지 않고 있다. 한마디로 당장 실익이 없더라도 노다지를 찾겠다는 전략이다.
이에비해 삼성그룹의 대소전략은 퍽 대조적이다. 지난 88년 북방열기가 한창일때 현대를 비롯한 대기업들이 떠들썩하게 대소진출을 추진했으나 삼성은 대외적으로 『아직 국내기업이 진출하기엔 위험이 많고 때가 이르다』며 관망하겠다는 태도를 표명,북방시대에 한발뒤지는게 아니냐는 인상을 주었으나 실은 극비리에 대소진출을 활발히 추진해온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의 한관계자는 『어떤 사업이든 완전히 무르익기전에는 발표하지 않는것이 삼성의 전략이다. 요란하게 선전을 하지 않았을뿐이지 대소진출에 가장 실속을 차리고 있는 기업이 삼성이다』고 털어놨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신중함으로 실리위주의 전략을 추진해왔다는 것이다. 삼성의 교역실적을 보면 이것이 사실임을 알수 있다. 88년 전체 대소교역규모 3억달러중 14%인 4천3백만달러의 실적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전체대소교역규모 6억달러중 29%에 달하는 1억7천5백만달러의 실적을 올려 국내기업중 최고의 실적을 기록했다.
특히 소련어를 구사할 수 있는 전문인력(약 80명확보)과 소련에대한 정보를 가장 많이 확보,실질거래에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것이 삼성측의 자랑이다.
삼성은 또한 소련과의 거래는 인맥을 잡는것이 관건이라는 사실을 가장 먼저파악,인맥확보에 성공한것으로 알려졌다. 현대그룹이 고위인사를 중심으로 접촉을 벌여온데 비해 삼성은 실무자와 인맥을 맺어 실효를 거두었다는것. 소련과의 인맥은 맺기는 어렵지만 한번 맺어지면 끊어지지않아 제3자가 끼어들기가 불가능,다른기업들도 인맥찾기에 열을 올리고있다.
삼성전자가 소련에 VCR라인을 수주받아 기능공까지 보내 완벽한 제품이 나올수 있도록 지도해준것이 소련측으로 하여금 「삼성은 믿을수 있는 파트너」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우그룹은 초기에는 공격적으로 대시했으나 최근엔 궤도를 수정,가시적성과를 얻어내면서 굵직한 프로젝트를 모색한다는 전략을 보이고 있다. 김우중회장이 자주 소련을 왕래,모스크바호텔 사업이 결실을 맺는듯했으나 소련측파트너와 부지를 찾지못해 지지부진한 상태며 다만 미국의 헤그사 및 소련 로삭사와 합작한 연산 20만대 규모의 전자레인지생산설비 및 기술제공사업은 성사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대우는 선결과제인 대우조선경영정상화문제 때문에 리비아에서처럼 모험적인 사업추진을 보류하고 당분간 전자제품ㆍ섬유등 경공업제품 유통사업진출과 스타킹생산공장등 그룹의 강점을 활용할수 있는 분야의 진출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진출에 치중한 나머지 소련진출에 한발 뒤진 럭키금성은 치약ㆍ치솔ㆍ비누 등 생필품과 가전제품의 적극적인 수출로 후발주자의 핸디캡을 극복한 케이스. 미국벡텔그룹 및 소련 이조르스키자보드사와의 3자합작형태로 레닌그라드개발사업에 참여케 된 럭키금성은 소비재가 소련측으로부터 호평을 받음에따라 소비재공장건설과 가전제품공장건설을 추진할 계획인데 서방국가와의 3자합작형태를 선호,신중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밖에 선경ㆍ효성ㆍ쌍용ㆍ코오롱 등은 위험부담은 지지않겠다는 자세로 관망하고 있는데 최근 한소수교가 기정사실화되자 「이삭줍기전략」에서 탈피,독자적인 루트를 찾기시작했다.【방민준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