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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몬트 야화(기자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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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어몬트 야화(기자의 눈)

입력
1990.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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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프란시스코의 밤공기는 차다. 서늘하다는 편이 어울리지만 한낮의 아열대성 기후에 비해 심한 일교차로 여행자에게는 「차다」고 느껴지곤 한다.반면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역사적 대좌를 앞둔 전날밤,그 찬공기속에서 한소양측은 마지막 실무접촉을 거듭하며 뜨거운 열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측의 노재봉비서실장ㆍ김종휘외교ㆍ안보보좌관과 소련측의 도브리닌대통령고문은 정상회담의 형식,합의내용의 윤곽,향후조치 등에 관한 의견조정을 위해 4일 새벽 3시(한국시간 4일 하오 11시)까지 몇차례에 걸친 실무접촉을 벌였다. 노대통령도 잠을 못이룬 것은 물론이다.

일요일 밤과 월요일 새벽으로 이어지는 호텔밖의 냉랭한 고요함,바로 그 시각 양측 고위급 실무자간의 열띤 대화­이같은 페어몬트 호텔밖과 안의 대조를 설명하기란 쉽지않다.

외교는 냉정한 것이라 한다. 국가대 국가간의 접촉가치는 결국 차가운 실리뿐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우리의 상대는 초강대국이면서 공식외교접촉의 경험을 한번도 갖지못한 소련.

슐츠 전미국무장관으로부터 잠시 자문을 구했던 것도 대소외교의 경험을 빌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가 정상회담개최의 중개를 맡았다는 소문은 와전됐다는게 정부관계자의 얘기다.

한소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국민들은 대뜸 1백점짜리 외교를 원할지 모른다. 외교의 냉정함에 대한 이해를 구하기가 힘든 점도 있다.

아마도 도브리닌과 심야에 책상을 마주한 청와대실무자와 이를 지켜보고 있는 노대통령의 뇌리에는 이같은 국민들의 시각에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대한 고심이 자리잡았으리라.

대립관계의 미수교국 양국정상 만남만으로도 노­고르비 회담은 역사성을 지니지만 4일의 페어몬트 한소 정상회담을 양국간의 정식 수교식쪽으로 생각하는 국민도 있는 현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소측 실무자인 도브리닌의 마음속에는 여러가지 소련의 이해가 담겨 있었을 것이다. 소련 체제내의 개방개혁과 관련한 갈등,전격적 대한국수교(아직은 사실적 인정ㆍDe Facto Recognition)에 따른 그들 우방국과의 관계,경협확대에서 비롯될 자존심의 문제 등.

때문에 4일 노­고르비 회담의 합의사항과 논의내용은 양국간 상호이해의 갭을 최소화시킨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회담절차와 의전문제에 대한 우리측의 불만도 적지않으나 적어도 지금 이순간 회담장주변의 「낙수」는 덮어둬도 좋을 것이다. 페어몬트 호텔의 야화는 어쩌면 「45년분단」의 한을 표시한 것이기도 하고 고통스럽지만 감내하고 밟아야할 역사이기 때문이다.<이종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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