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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냉전 청산/노­고르바초프회담,그 역사적 의미(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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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냉전 청산/노­고르바초프회담,그 역사적 의미(사설)

입력
1990.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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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소련 두 나라 대통령의 만남은 86년만의 만남치고는 너무 짧은 1시간 남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도 예정된 회담이 아니라는 형식을 취하려는 소련측의 의도때문이었는지 예정시간이나 절차에 사전협의없이 이루어졌다.그러나 5일 상오(현지시간 4일 하오)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회담은 「역사적」이라는 말밖에는 적절한 표현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노대통령이 회담에 앞서 말한 것처럼 『회담 자체가 한반도에 있는 냉전의 얼음이 깨지기 시작한 것』을 뜻한다는 것은 회담이 끝난 뒤에 역시 틀림없는 현실로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날 회담에서 두 나라 대통령은 동북아에 있어서의 「냉전청산」이라는 큰 원칙에 의견을 같이 한 것으로 밝혀졌다. 두 나라는 「궁극적으로 완전한 수교」 원칙에 의견을 같이했고,두 나라 대통령이 서로 교환방문하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합의는 그 자체보다 훨씬 큰 의미를 지닌 결정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에 의하면 『주변국가와의 관계에 있어서 애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러한 마찰을 무릅쓰고 내린 결정이기 때문이다. 「주변국가」란 두말할 것도 없이 북한을 가리킨 말이다.

소련이 북한의 저항을 무릅쓰고 우리측과의 관계개선을 정상회담을 통해 재확인한 것은 동시에 노대통령이 요청한 「북한의 개방을 위한 공동노력」을 받아들인 결정임을 뜻한다.

이로써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한반도에 있어서의 「냉전청산」을 구체적이고도,직접적으로 공언한 셈이다. 샌프란시스코회담이 갖는 「역사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여기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초강대국 사이의 대결을 청산할 뿐 아니라 남북대결의 사실상의 한쪽당사자인 소련과 우리측의 대결을 청산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날 회담에서는 또한 한반도에서의 군사문제와 경제협력문제가 논의된 것으로 밝혀졌다. 군사문제란 그동안 자주 논의돼온 북한측의 핵안전협정가입문제와 관련되는 일이기도 하다. 이날 노대통령은 우리측의 평화의도를 다짐했다.

○복합적인 아시아 정책

이와 관련해서 북한측이 샌프란시스코회담을 겨냥한 듯 미국과 남북한의 3자가 군축회담을 갖자고 제기한 사실이 주목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군축논의가 이미 직접 간접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회담이 끝난 뒤 특히 두 나라 사이에 상당한 규모의 「통상관계」가 있음을 지적한 것으로 보도됐다. 소련으로서는 한ㆍ소 관계정상화라는 정책전환을 경제협력으로 정당화하려는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회담을 고비로 해서 소련은 한국과의 경제협력규모의 확대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할 것은 확실하다.

소련의 한국과의 경제협력확대정책은 물론 그만한 실리를 노린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또다른 효과를 노린 복합적인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가장 큰 부대적 효과는 상업적 타산에 약삭빠른 일본을 보다 적극적인 시베리아개발의 파트너로 끌어들이자는 계산이 있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그런 뜻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관측은 소련의 대한정책이 냉전청산이라는 큰 원칙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또 다른 복합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고 있을 것이라는 분석을 가능케하는 것이기도 하다. 우리가 앞으로의 한ㆍ소관계를 내다보는 데에 빠뜨려서는 안될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 변화 올 것인가

소련이 유럽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시아에서도 냉전을 청산함으로써 새로운 평화체제와 번영을 이룩하자는 의도를 선언한 것은 86년 7월 고르바초프의 「블라디보스토크연설」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동쪽 창을 열겠다』는 블라디보스토크연설은 아시아에도 해빙이 다가오고 있음을 처음으로 암시한 것이었다.

그는 이어서 88년 9월 크라스노야르스크방문때 아시아ㆍ태평양지역평화안 7개항을 내놨고,한국과의 경제협력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만남은 이러한 소련의 범세계적인 정책전환과 이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고르바초프의 냉전청산정책이 유럽에 한발 늦게 아시아에서 어떤 성과를 가져올 것인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이 안으로는 전통적 보수주의노선을 고집하고 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우리는 북한의 폐쇄적인 지배체제가 온존되는 한 한반도 평화는 있을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을 잊을 수 없다.

샌프란시스코회담이 끝난 다음 노대통령은 『북한이 멀지않아 개혁ㆍ개방노선을 수용할 것이며,북한의 변화는 매우 빨리 진행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그것이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얻은 결론이라면 아마도 샌프란시스코회담이 가져다 준 최대의 성과가 될 것이다. 소련이 과연 북한측에 대해 어떤 의도를 갖고 있고,또 얼마만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확실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소련은 지금까지 서울과의 비정치적 교류확대를 상당히 빠른 템포로 추구해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평양측과의 동맹관계를 존중해 왔다.

뿐만 아니라 적어도 지금까지 나타난 현실로는 소련이 평양측의 체제변혁을 강요할 의도도,또 그럴 입장에도 있지 않다고 공언해왔고 또 그렇게 생각돼왔다.

샌프란시스코회담은 분명히 냉전시대의 최전선인 한반도에서 한국과 소련이 공식적으로 적대관계청산을 선언한 화해의 무대였다. 그것이 「역사적」이라는 이유는 냉전청산이라는 세계사의 흐름이 마지막 전환을 했다는 사실때문이다.

이러한 역사적 전환이 과연 평양측에 어떤 영향을 주고,그럼으로써 과연 세계의 마지막 분단ㆍ대결지대에 언제 어떻게 평화와 화해를 가져다 줄 것인가? ­그것이 우리가 갖는 최대의 의문이자 기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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