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일정 쫓겨 1시간 늦게 시작/노대통령 “우리 통일도 2+4형태 될 것”/소 과잉경호ㆍ수행원동행 저지로 마찰도/라이사여사 한인가게 들러 담소 「고」 지원○간간이 위트ㆍ유머도
▷한소 정상회담◁
4일 하오 5시20분(한국시간 5일 상오 9시20분)께 시작,65분동안 한소 정상회담이 열린 페어몬트호텔 스위트 룸은 한쪽의 창이 태평양을 면해있는 방으로 노태우대통령이 창을 향해,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을 등뒤로 해 양측 배석자와 나란히 착석.
회담시작직전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바쁜데도 만나 뵙게돼 반갑다』고 인사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나도 바쁘지만 꼭 노대통령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고 인사.
노대통령은 회담서두에 창밖의 태평양을 가리키며 『저 건너편에 우리 한반도,소련 그리고 아시아가 있는데 우리가 살고있는 지역을 멀리 보면서 태평양서쪽의 평화를 얘기하는 것은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자 고르바초프대통령은 『태평양지역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함께 사는 지역이며 이곳의 평화와 번영은 모두에게 소중한 것』이라고 화답.
○“빨리 헤어져 아쉽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회담을 과일에 비유,『우리가 시작한 새로운 시발을 잘 가꿔 모든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으로 성숙시켜 나가자』고 말하는등 회담 중간중간에 양국대통령은 위트와 유머도 섞어가면서 화기로운 회담을 진행했다고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이 전언.
특히 두사람은 모두 회담내용과 결과에 매우 만족감을 표시했다고 이대변인이 전했는데 회담후 노대통령의 표정에서는 흡족감이 역력.
그러나 이대변인은 이날 회담시간이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일정때문에 1시간에 그친 것이 마음에 걸리는듯 『두 대통령이 요점을 얘기했고 통역도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 많은 얘기를 나누었다』고 회담시간이 결코 짧지 않은 것이었음을 애써 강조.
당초 하오 6시께(한국시간 5일 상오 10시)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캄차카로 향할 것으로 알려졌던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일정이 순차적으로 늦어져 노대통령과의 회담이 6시20분에야 끝나자 서둘러 회담장을 떠났는데 노대통령과 헤어지면서 『시간때문에 아쉽다. 오랜 시간의 비행계획이 남아있고 떠나는 일정이 급해 정말 아쉽다』고 말하며 『오늘 우리의 만남이 건설적인 양국관계의 출발』이라고 다시한번 의미를 부각.
▷내외신 기자회견◁
노대통령의 기자회견은 양국 정상회담이 끝난 지 40분만인 하오 7시정각(한국시간 5일 상오 11시)에 시작,노대통령의 준비된 성명서 발표와 기자들의 일문일답으로 35분간 진행.
감색 양복을 입은 노대통령은 역사적인 정상회담의 결과가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느낀 듯 환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인 페어몬트호텔 1층 베네치아홀에 입장한 뒤 곧바로 노창희의전수석의 통역으로 기자회견을 개시.
○장소제공 미측에 감사
노대통령은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만남이 한반도 냉전의 얼음을 깨는 첫걸음이라는 내용등 중요 대목에 이르러서는 상기된 표정으로 기자들을 응시하거나 목소리를 높이기도.
노대통령은 7쪽의 성명서를 20분가량 읽어내려간 다음 한국기자 2명(한국ㆍ조선)과 미국(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영국기자(파이낸셜타임) 등 4명의 질문을 차례로 받고 상세하게 대답. 특히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지 코니ㆍ강기자의 감회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끝에 『샌프란시스코시장과 시민들이 3일을 노태우의 날로 지정해 주고 4일을 고르바초프의 날로 지정해주는 알뜰한 협조와 정성을 보여준 데 대해 다시한번 감사드린다』고 치하,역사적 정상회담 장소를 제공한 샌프란시스코시에 대해 고마움을 표명.
노대통령은 마지막 질문자인 영국파이낸셜 타임지기자의 물음에 대한 답변이 끝나자 『여러분을 기다리게 한 데 대한 미안한 마음에서 보너스로 한분만 더 질문받겠다』고 조크,굳어있던 기자회견장의 분위기를 일순 바꾸어 여유를 보이기도.
노대통령은 여러 기자들이 손을 들어 질문을 신청하자 기자회견장에 일본기자들이 많음을 고려한 듯 『일본기자가 좋겠다』고 제의,공동통신의 후쿠지마기자가 막차를 타는 행운.
이날 회견장에는 세계 4대통신과 미국의 3대TV,일본의 주요언론 등 외신기자 2백명과 국내기자 1백40명등 3백40명의 내외신기자들로 성황.
○사진사 1명만 입장
▷회담전 분위기◁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이날 스탠퍼드대 강연을 마치고 예정보다 40분정도 늦은 하오 3시30분(한국시간 5일 상오 7시30분)께 회담장과 같은 장소인 페어몬트호텔에 도착,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예정됐던 일정인 미 경제인초청 오찬연설회에 참석.
이 때문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은 40분 늦은 하오 5시5분(한국시간 5일 상오 9시5분) 정상회담장인 호텔 신관 23층으로 먼저 올라갔으며 10분뒤인 하오 5시15분 노대통령이 뒤따라 입장해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은 예정보다 1시간가량 늦은 하오 5시20분께 시작.
이보다 앞서 하오 5시 정각 주미소련대사를 비롯한 소련측 참모들이 회담장으로 올라갔으며 우리측 배석자들은 노대통령과 함께 회담장에 입장.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미 경제인 오찬장인 본관에서부터 복도를 따라 30여m 걸어와 회담장인 신관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회색 더블보튼 양복을 입고 있었으며 꽉짜인 일정때문인지 다소 피곤한 표정.
이날 회담장에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이 국빈으로 방미했기 때문에 모든 편의시설이용의 우선권을 소련측이 행사해 엘리베이터 사용이나 경호절차를 소련측이 전담.
때문에 회담시간도 1시간정도 늦어졌고 우리측 공식수행원들도 미리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노대통령과 함께 탑승하느라고 소련측 경호원들과 소동을 벌이기도.
특히 소련측은 당초 회담취재기자를 한국측 6명,소련측 6명,미국측 3명,한소 기록사진사 각각 1명 등으로 하기로 합의했으나 뒤늦게 회담시작전 이같은 합의를 번복.
이 바람에 우리측 수행기자들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우리측 대표단을 뒤따르려다가 소련측 경호원들의 제지로 기록사진사 1명만 회담장입장이 가능했으며 이 사진사도 회담시작 20여분전에 미리 소련측 안내를 받아 회담장인 23층에서 대기.
○일정 안밝혀 애먹어
소련측은 이날 고르바초프대통령이 회담장인 23층으로 올라간 후 회담장소를 정리한다는 이유로 우리측 경호원들과 수행원이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도록 막았는데 노대통령이 숙소인 본관 7층에서 내려와 회담장이 있는 신관쪽으로 걸어오자 소련측 경호원들은 당황해 하며 엘리베이터 문을 열고 안내.
그러나 우리측 수행원 일부는 정원이 6명인 이 엘리베이터에 노대통령과 함께 탑승하지 못하고 뒤늦게 내려온 다른 엘리베이터를 타느라고 소련측 경호원들과 우리측 경호원들 사이에 약간의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이날 회담이 예상보다 늦어진 것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레이건 전 미대통령과의 조찬을 1시간정도 늦게 시작해 그이후 일정이 자동적으로 1시간씩 순연됐기 때문.
○…노대통령은 4일 낮(한국시간 5일 상오) 숙소인 샌프란시스코 페어몬트호텔에서 수행중인 최호중외무장관 노재봉대통령비서실장 등 공식수행원들과 오찬을 같이하며 한소 정상회담을 갖는 심경과 의미를 설명.
노대통령은 『한소 정상회담을 하는 것 자체가 한반도에 있는 냉전의 얼음이 깨지기 시작한 것이며 이제부터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걸음이 시작된 것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지난 1904년 소련과 국교가 단절된 지 86년만에 과거의 불행했던 시대를 지나 한소 관계정상화의 길에 들어서 화해가 시작되는 것』이라고 이번 회담의 의미를 설명.
노대통령은 통일문제에 언급,『우리의 통일은 남북한 당사자가 자주적으로 이루어야 하겠지만 독일의 경우를 보면 동서독뒤에 미ㆍ소ㆍ영ㆍ불 등 주변 4강이 관련되어 있다』면서 『우리의 통일도 남북한 뒤에 미ㆍ소ㆍ일ㆍ중 등 4강이 있어 2+4의 형태가 되어있기는 마찬가지』라며 88년 유엔연설에서 제의한 6개국 동북아 평화회의의 당위성과 현실성을 강조하기도.
노대통령은 이와관련,『우리도 통일은 자주적으로 해야 하나 통일의 환경은 2+4로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유엔의 연설,일본방문,소련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앞으로는 중국 북한과의 관계개선만을 남겨 놓고 있다』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
▷실무진 사전접촉◁
우리 정부측은 4일 하오(한국시간 5일 상오)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의 성공을 위해 회담직전까지 소련측 관계자들과 접촉을 가지면서 면밀히 대비.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이날 상오 『한소 정상회담을 위해 소련측 관계자들과 접촉을 계속하고 있다』고 밝히고 『그러나 소련측이 바로 직전까지 고르바초프의 일정조차 확정하지 않고 있다』고 말해 준비의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표현.
○소선 경비견까지 동원
▷회담장 주변◁
회담장 밖에서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기자들이 호텔정문에 몰려 취재경쟁을 벌였으나 취재의 초점인 고르바초프가 이들의 의표를 찌르며 뒷문으로 들어가자 당황해하는 모습.
고르바초프의 도착모습을 카메라에 담지 못한 사진기자들은 신관 엘리베이터입구로 몰려갔지만 1천여 환영인파보다 4백여명이나 많은 미국과 소련의 경호원들이 경비견까지 동원해 삼엄한 경비를 펼치는 바람에 접근이 봉쇄.
○…정상회담 장소인 페어몬트호텔 주변은 4일 하오 1시(한국시간 5일 상오 5시)부터 갑자기 경찰병력이 증강되고 첨단보안장비를 갖춘 특수차량들이 에워싸면서부터 경비가 한층 강화.
미 경호팀들은 호텔외곽 건물옥상에까지 요원들을 배치했고,공중에는 경찰헬기가 선회. 또 호텔안에서는 청와대경호실ㆍ미 연방보안대ㆍ소 KGB요원들이 요소요소에서 경비.
▷라이사여사◁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부인 라이사여사는 4일 하오 3시께 샌프란시스코 트윈피크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길에 근처에 있는 한국교포 김혜자씨(31)의 가게에 들러 15분가량 담소를 나눠 남편의 한소 정상회담을 측면지원.
라이사여사는 김씨의 손을 잡고 가게안을 둘러보며 『물건이 남으면 어떻게 처리하는가』 『보드카는 얼마나 잘 팔리는가』 등을 묻고 가게를 나가며 김씨와 기념촬영까지 하는 자상함을 보이기도. 김씨는 『라이사여사가 굉장히 부드러운 인상이었다』며 『10년간 가게를 경영해오는 동안 가장 귀한 손님을 맞았다』고 상기된 표정.
▷현지반응◁
한소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의 신문들은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샌프란시스코 도착부터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TV방송도 매시간 이들의 동정을 소개.
LA타임스지는 「많은 군중들이 한국의 지도자를 맞이한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공항및 숙소인 페어몬트호텔 앞에 서있는 교민들의 환영및 반대시위소식에 덧붙여 두 정상은 국교정상화및 한반도평화와 통일에 관한 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보도.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는 「한국의 노대통령,고르바초프와 만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오다」는 제목의 1면기사를 실었고,오클랜드에서 발행되는 더트리뷴지도 노대통령의 출국성명등을 소개.【샌프란시스코=특별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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