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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ㆍ고르비 회담 이후(조두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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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ㆍ고르비 회담 이후(조두흠칼럼)

입력
1990.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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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직후 항간에 유행했던 아이들 동요가 생각난다. 『미국을 믿지 말고 소련에 속지 말라,일본은 일어난다』일본패망으로 미소양국군이 38도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점령하고 일본인들이 봇짐을 싸고 본국으로 돌아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로부터 45년이 지났다. 해방동이가 45살의 중년이 된 오늘날 국제정세변화는 참으로 엄청나다. 지난 1948년이래 지속된 미소양극의 냉전체제는 「얄타에서 몰타」로 상징되듯 급변,바야흐로 탈이데올로기,평화공존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패전국 동서독은 통일을 목전에 두고 있고 일본은 세계최강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 당시의 상황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격세지감을 갖게한다.

부시,고르바초프의 미소정상회담에 이어 오늘 (5일)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노태우­고르비의 한소정상회담이 열린다. 노대통령은 이미 지난달말 일본을 방문했고 고르비와의 회담후 바로 부시대통령과도 만난다. 뿐만 아니라 오는 9월 북경에서 열리는 아시아경기대회에 전대회주최국 원수로서 중국을 방문하리라는 보도다. 지난 시절의 반일,반미,반소의 분위기를 대신,강대국들과의 공조가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 두고볼 일이다. 하긴 제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이 개명된 시대에서 특정한 나라를 신뢰하지 못한채 경계만 할일은 아니다.

역사적인 한소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우리국민의 감회는 자못 새로울 수 밖에 없다. 70년대 우리여자배구선수단의 입소가 큰 뉴스거리로 등장하고 소련을 방문만해도 국가보안법상의 반국가단체로의 잠입ㆍ탈출죄가 적용되던 때가 엊그제였던 것 같다. 어쨌든 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급박한 신사고가 우리국민에게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새국면은 6공들어 우리정부가 꾸준히 추진해온 북방외교의 성과임에 틀림없겠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의 노력도 노력이겠으나 소련측의 필요성때문에 과감한 대한접근이 시도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의 진두지휘아래 정부각기관,밀사들의 은밀한 협조로 오늘의 대사가 이루어진 셈이다. 국내적으로 정치,경제,사회 각 분야에 「총체적난국」이 다가왔다고 우려하는 가운데 북방정책면에서만은 「총체적 노력」이 결실한 것 같다.

다만 한가지 지적해야할 것은 이 거창한 외교교섭의 마무리를 앞두고 그동안 어느 정치인의 방소,어떤 정부고관의 밀행등이 마치 큰 공로처럼 운위되었다는 점이다. 그런가하면 매스컴은 한소정상회담을 「외교상의 쿠데타」라고까지 자부하며 회담이 끝나면 우리가 안은 난제들이 얼음 녹듯이 잘 풀릴것처럼 흥분하고 있다.

노­고르비회담으로 한국이 그렇게 크게 덕을 보리라고 자화자찬한다면 앞으로 한국이 쓸 수순카드를 미리 내보여주는 꼴이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한소정상회담으로 양국의 수교,정상간의 상호방문,경제협력의 강화등 가시적인 성과가 보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움직임이 한반도의 긴장완화,북한의 민주화,개방,나아가 통일에의 디딤돌이 된다면 망외의 보람이리라.

한데 벌써 50억달러의 차관설,10억달러의 현금차관,20억달러의 현물차관설등으로 요란법석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소련경제는 70년간의 공산당통치때문에 페레스트로이카의 채택만으로는 쉽게 재건될 기미가 없어 보인다. 고르비의 외교성과는 높이 평가되고 있으나 내정의 위기는 아직도 심각하다. 소련의 생산력은 좀처럼 증가하지 않고 소비재의 부족은 우리가 상상하기 힘든 정도다.

고르바초프는 지금 구름이 가득 덮인 산을 오르고 있는 것으로 비유되어 그 전도를 불안해하는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소련이 안은 외채는 4백80억달러,당장 체불된 무역대금만해도 10억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소련은 대한수교로 아시아에서 경제활력이 있는 한국을 끌어들여 소비재생산,시베리아개발에 박차를 가하려는 의도를 가진것이 분명하다.

하나 적지않은 전문가들은 소련이 북방도서등 미해결현안때문에 대소투자를 꺼리는 일본을 참여시키기 위해 「한국카드」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시사하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1조5천억달러에 달하는 일본의 금융자산이 목표라는 풀이도 있다. 한국이 「황금알」을 낳는 부국도 아니요,더욱이 올들어 5월말까지 무역적자가 30억달러선을 상회했다는 현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 같다.

물론 대소수교,정상의 상호방문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고 평화가 정착되면 안보면의 위협이 없어지며 그만큼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소수교는 어디까지나 우리 한민족이 잘살고 궁극적으로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수단이지,결코 목적은 아닌 것이다. 너무 들뜨지 말고 주와 객을 혼동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할 줄 안다.

미국이 어떻게 소련경제를 도울 것인가,일본이 어떤 방법으로 시베리아 개발에 참여할 것인가,그리고 서구가 어떻게 동구를 원조할 것인가. 이러한 국제정치경제의 커다란 테두리안에서 우리경제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 같다. 아직도 미약한 한국경제가 위기에 처한 소련경제에 캄프로주사나 놓아주는 우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북방외교의 획기적인 승리로 지구상에 마지막 폐쇄국으로 남은 북한이 하루속히 시대착오적인 적화통일정책을 버리고 민족자존,평화공존,평화통일을 우해 대화를 재개하기를 촉구한다. 이 밝은 국제사회에서 북한만이 고립,낙오되는 사태는 동족으로서 누가 바라겠는가.

마지막으로 부탁할 것은 북방외교는 정권차원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행여 외교를 내치에 이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곤란하다. 국민은 정부가 이룬 치적만큼 지지를 보내는 법이다.【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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