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독ㆍ리투아니아문제 평행선/군축진전 불구 신뢰회복 미흡【워싱턴=이재승특파원】 미국은 이번 부시고르바초프 양국정상회담에 과거와 다른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전후 반세기의 냉전체제 유산을 묻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동구의 스탈린주의형 공산체제 붕괴에 따른 유럽의 새질서구축에 미ㆍ소가 협력체제를 확립할 수 있느냐 하는 가능성을 타진하는 「시험대」로 봤다.
부시고르바초프 정상회담은 아직 만 하루를 남겨두고 있다.
외부와 차단돼있는 미대통령 주말휴양소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부시고르바초프 양정상은 지난 2일간 4차례 회담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한반도 등 지역분쟁문제와 양측의 이견이 평행선을 긋고 있는 통일독일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베이커 미국무장관은 1일 하오 회담결과를 중간결산하는 셈인 기자회견에서 두가지 이슈 즉 통일독일과 리투아니아의 분리ㆍ독립운동의 처리방법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고 솔직히 털어 놓았다. 이번 정상회담 목적의 중요한 50%라고 할 수 있는 이 양대현안에서 미ㆍ소는 팽팽히 맞섰다. 부시대통령과 제임스ㆍ베이커 국무장관은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첫대면할 때부터 이 문제를 부각시켰다.
부시대통령은 통일독일은 나토에 가입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베이커 국무장관은 통일독일문제에서 헬싱키협정(전후국경인정)과 민주적가치가 『유일하게 가시적이고 적법한 해결이다』고 말했다. 그는 통일독일이 어디에 귀속하는가는 그들의 자결권의 문제라고 전제하고 독일국민들은 나토에 귀속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통일독일이 나토 군사위원회의 가입등 정회원으로 계속 참여하는 것이 소련을 포함한 전유럽의 평화와 안정을 보장해주는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은 통일독일의 중립내지 전유럽안보 및 협력회의(CSCE)의 역할 확대를 주장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문제해결에 명령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며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 수락을 요구하는 서방측 주장을 신랄히 비판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소련의 적절한 이익』이 고려돼야 하고 통일독일의 나토 잔류가 소련의 이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소련은 리투아니아 분리ㆍ독립문제에 대해 『우리식대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는 리투아니아 분리ㆍ독립운동을 「국내일로」간주,「내정불간섭」을 내세우고 있다. 소련은 통일독일과 리투아니아 문제에 대한 입장을 하루아침에 바꿀 수 없다.
고르바초프는 헌법질서에 따른 분리를 주장했는데 이는 사실상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번 회담이 통독문제와 리투아니아 문제만을 다룬 회담이었으면 실패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부시고르바초프 양대통령은 조약ㆍ협정ㆍ공동선언문 등의 형태로 군축에서 해상운수까지 광범하게 합의했다.
이번 회담의 핵심의제의 하나인 전략핵군축협정(START)은 완전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으나 「가시적진전」이 이루어져 올해말에는 본협정 조인이 가능하다고 했다. 부시고르바초프 양대통령은 전략핵군축협정에 대한 공동발표문을 발표,상당한 진전이 실현된 것을 공지했다. 미ㆍ소 양대통령은 ▲화학무기 파괴 및 감축협정 ▲핵실험금지 협정을 체결,조인했다. 전략핵무기 감축협정은 핵무기를 당초 50% 감축 예정이었으나 30%로 축소 조정됐다. 핵심문제의 하나인 크루즈미사일과 중형이동식 다탄두미사일의 제한에 합의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동식미사일의 경우 도로와 철도이용 미사일의 확인문제가 해결됐다.
베이커장관은 중형미사일과 다탄두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전략미사일에 탄두를 집중시키는 것을 제한하는데 역점을 두기로 했다고 밝혔다.
화학무기 감축협정은 미ㆍ소가 2002년까지 미국의 현재고의 20%선인 약 5천톤까지 감축한다는 것이다.
유럽재래식군사력(CFE) 감축문제는 병기의 정의부터 복잡하고 까다롭고 또한 35개 관련국과의 합의를 전제로 하고 있어 미ㆍ소 양측은 올해 CSCE 정상회담을 개최키로 합의했는데,정상회담 소집은 CFE 협정의 체결을 전제로 하기로 합의했다.
또한 무역협정과 곡물협정의 체결이 주목된다. 부시대통령은 소련이 이민을 보다 자유롭게 하는 이민법제정을 거부하고 또 리투아니아등 소수민족 공화국의 분리ㆍ독립운동에 대한 응징으로 가솔린등 유류공급 중단등 경제보복 철회를 거부함에 따라 협정체결에 미온적이었다. 부시대통령의 거부에 따라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곡물협정의 체결을 거부,이때문에 조약서명식이 늦어지기까지 했다.
결국 부시대통령의 양보로 양협정이 조인되게 됐다. 미 행정부는 그러나 이민법이 제정되지 않을 경우 무역협정을 의회에 송부하지 않겠다고 했다. 우여곡절끝에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귀국선물을 얻게된 것이다.
이밖에도 미ㆍ소 양국은 민간항공협정,해운협정,학생교환협정,수역경계협정,문화원설립협정 등을 체결했다.
부시고르바초프 양수뇌는 『회담의 성패는 조인하는 협정수보다 분쟁의 근본요인을 제거하려는 건설적인 협력과 신뢰의 구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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