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의 대북태도 변화 여건호전/북 딜레마… 형식적 개방 나설 듯/혁명 1세들 완강 급격한 변화는 아직 미지수한소 정상회담은 단순히 양국 관계개선뿐 아니라 남북한관계를 비롯한 한반도 주변정세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이 우리측의 정상회담 제의를 받아들인 사실 자체는 일반 북한에 대한 소련의 태도가 보다 분명해졌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소련은 그동안 우리측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면서도 북한을 의식,정부간 공식관계수립에는 미온적 태도를 보여왔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 결정은 소련이 더이상 북한을 한소관계의 변수로 생각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특히 소련은 이번 정상회담 개최를 북한측에 뒤늦게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따라서 북한 외교부대변인은 31일 『소련측으로부터 공식 통보받은 사실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돼 북한의 불편한 입장을 간접표출했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에 대해 『이번 정상회담 준비과정에서 소련은 북한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해 소련의 대북한태도가 완전히 변화했음을 뒷받침했다.
소련의 이같은 태도변화는 북한에 심대한 충격을 안겨 주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으로선 이번 정상회담을 개혁ㆍ개방을 유도하기 위한 소련의 강도높은 압력으로 의식할 수도 있다. 실제 소련은 북한이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동조하지 않는 데 대해 불만을 표시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들어 소련은 언론매체를 통해 김일성체제를 자주 비판해왔고 이 때문에 북한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북한이 최근 타스통신기자를 추방한 것은 이러한 소북한관계의 악화정도를 반영하는 것이다.
북한은 소련의 계속되는 개방압력에 따라 대단히 곤혹스런 입장에 빠지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현재 체제유지를 최우선 당면과제로 삼고 있다. 동구개혁등 강력한 외풍과 한국의 북방외교 성공,내부적인 경제난 등으로 체제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특히 김일성김정일 부자권력승계문제가 해결해야 할 중요과제로 남아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북한은 체제를 즉각적으로 붕괴시킬 수 있는 개방정책을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것이다. 북한은 이미 지난달 24일 열린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를 전후해 당과 내각등 주요기구를 개편하면서,최광,김철만,최영림 등 혁명1세대를 재기용함으로써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체제강화 의지를 분명히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시정연설을 통해 남북대화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북한이 이처럼 체제유지를 위해 폐쇄적인 정책을 고수하는 데 있어 한소 정상회담등 소련측의 적극적인 대외정책은 결정적인 장애로 작용할 것이 분명하다.
군사적인 원조는 물론 자본,에너지 등 경제의 상당부분을 소련에 의지하고 있는 북한으로선 한소 정상회담이후 가속될 소련의 개방압력을 무시할 수만은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특히 북한은 루마니아 차우셰스쿠정권의 붕괴에 소련이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소련의 개방압력을 계속 거부할 경우 이와 유사한 작용이 가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상황등을 종합해 볼때 북한은 당분간 남북대화등 형식적인 개방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개방자체가 체제유지와 모순되기 때문에 남북한간의 실질적인 인적ㆍ물적 교류 등에는 여전히 완강한 자세를 고수할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북한은 한소 관계개선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과의 접근을 더욱 적극적으로 시도할 것이 예상되나 이또한 체제내부적인 모순때문에 진척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현재 대북 관계개선의 전제조건으로 ▲테러 포기선언 ▲핵안전조치협정 가입 ▲남북한간 직접대화및 교류등을 북한에 명백히 요구하고 있으나 북한은 아직 이에대한 성의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북한이 한국전 참전 미군유해 5구를 반환한 점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나 미국은 북한이 당연히 돌려줘야 할 유해를 협상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데 대해 불쾌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관련,지난 30일 북한측 요청으로 북경에서 열린 미북한 10차참사관급 접촉에서 북한은 미국측에 김일성시정연설 내용만을 설명하는등 불성실한 태도를 보여 미국측의 반발을 샀다는 후문이다.
북한이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려면 결국 45년간 체제를 유지시켜온 「적화통일」이라는 대남정책을 수정해야 한다.
따라서 북한과 미국의 관계개선은 남북한간의 직접대화및 교류,적극적인 개방정책,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에의 동참등 북한의 근본적 변화와 맞물려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소간의 급속한 관계개선에 따라 한중관계도 새로운 단계에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한중간에는 이미 상당한 양의 무역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는 데다 오는 9월 북경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영사단 파견교섭등이 진행되고 있어 이번 한소 정상회담을 계기로 양국관계가 급속히 진전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은 점점 더 고립과 개방의 갈림길로 내몰리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관계전문가들은 그러나 김일성체제가 존속되는 한 북한은 근본적인 체제위기를 가져올 고립을 피하기 보다는 즉각적인 위험성을 포함한 개방을 거부하는 쪽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한다.
한소 정상회담이후 급격히 재편될 한반도 주변정세는 북한에 김일성체제 자체를 포함한 근본적인 변화를 강요할 것으로 보인다.<정광철기자>정광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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