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투표혁명」이 동남아의 마지막 군사독재국가인 미얀마에서 일어났다. 애초에 군사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한 「정치쇼」로 연출된 30년만의 선거가 예상을 완전히 뒤엎고 민주국민연맹(NLD)이 압승을 거둔 것이다.미얀마의 「투표혁명」이 과연 「선거혁명」으로 실현될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지만,네윈체제 28년이 끝나가고 있다는 역사적 현실에 이제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것은 확실하다. 동남아로서는 필리핀과 파키스탄에 이어 최근 네팔의 뒤를 받아 네번째 민주화혁명이 일어난 셈이다.
사실 미얀마의 강권통치는 동남아 최악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28년전 네윈장군이 쿠데타로 집권한 이래 최악의 위기는 지난 88년 9월이었다. 전국에서 민주화 요구 데모가 벌어져 공무원과 군인들이 합세했고,집권 사회주의계획당이 사실상 와해된 상태에까지 왔었다.
그러나 네윈은 친위쿠데타로 위기를 넘긴 뒤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가혹한 탄압을 펴왔다. 88년 9월의 소용돌이속에 희생된 시민만 수천명으로 짐작되고 있고,작년 6월에는 나라이름도 버마에서 미얀마로 바꿨다.
민주화운동의 구심점인 수키여사를 연금한 채 야당인사 2천여명을 체포하고,정당 37개를 강제해산했다. 반정부적인 국민 50만명을 밀림지대로 강제이주시키고,수키여사에게 3년형을 선고해서 피선거권을 박탈했다.
이번 선거는 하루아침에 93개의 정당을 풀어서 반정부운동의 구심점인 NLD를 와해시키려던 정치 쇼로 꾸민 것이었다. 그러나 중남미와 동유럽을 휩쓴 전세계적인 민주화바람은 결국 미얀마의 강권통치 28년에 결정적 타격이 됐다. 앞으로 「패배」를 인정한 사우ㆍ마웅은 『법에따라 정권을 이양하겠다』고 다짐했지만,그 법이 없는 현 여건속에서 정권이양이 순조롭게 실현될 것인지 주목된다.
우리로서는 83년 소위 「랑군테러사건」이후 밀접한 우호관계에 있었던 미얀마의 장래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고있는 것도 사실이다. 현재의 사우ㆍ마웅정부가 투표혁명을 시인한 이상 민주사회의 상식에 따라 빠른 시일안에 합법적인 민주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대하고자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우ㆍ마웅정부가 미얀마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길이 될 것이다.
이로써 동남아의 자원부국인 미얀마가 한사람앞 소득 1백90달러(87년)라는 최빈국 대열에서 탈출하고,세계적인 민주화대열에 참여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싶다.
지금 미얀마의 상황은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굴복하기를 거절했던 피노체트장군의 칠레와 비슷한 상황에 있다. 그러나 피노체트도 국민의 압력에 굴복하고 결국 정권을 넘겼다. 미얀마에서도 이이상 강권통치 연장을 시도한다면 엄청난 저항과 유혈참극이 벌어질 것은 의심할 나위없다. 우리의 우방이 그런 비극적 상황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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