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8일 판문점에서 36년만에 이루어진 한국전쟁전사 미군유해 인도에 북한측은 상당한 신경을 썼다. 유해는 견고한 잣나무관에 잘 수습돼 있었고 관과 똑같게 만든 유품상자에는 유해발굴과정에서 나온 단추 옷 인식표 군화 연필 등의 소지품이 잘 정돈돼 있었다.북한적십자회 요원들은 허름하긴 했으나 회색 검정색계통의 양복에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으로 「조국해방전쟁을 좌절시킨 미제원쑤놈들」의 유해를 정중하고 엄숙하게 운구했다.
북측 이성호대표는 인도를 마친뒤 기자회견에서 『87년 유해발굴이래 의료기관에서 과학적이고 위생적인 방법으로 보관해 왔다』고 북측의 성의를 강조한뒤 『이번일은 순전히 인도주의적입장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되풀이 말했다.
북측의 인도주의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88년제지조치(KAL기폭파사건이후 미국이 취한 제재)와 군사정전위를 통한 유해인도 등 인위적 난관을 조성했기 때문에 유해반환이 늦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순전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유해를 넘겨준 것은 아니었다. 우선 이성호대표가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라고 평가한 유해인도사실이 북한언론에는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또 『현재 1백구의 유해가 발굴됐거나 발굴가능성이 높다』며 『발굴과 반환의 계속여부는 미국측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말에서 알수있듯 북측의 유해인도에는 계산이 깔려있다.
북측은 미국대표단이 직접 평양에 와서 유해를 인수해가라는 주장대로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번에 미국의 의회대표단을 판문점에까지 오게함으로써 미국과 부분적이기는 하나 일종의 「직거래」를 텄다는 점에 대단히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이날 북한과 미국사이에 이루어진 작은 관계진전이 최근 동구공산국가에서 처럼 북한도 개방과 변혁을 지향하는 조짐이라고 판단하기에는 이르다.
『유해송환사업이 앞으로 조선반도의 평화통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북측대표들의 말대로 뼈로 나마 40년만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미국젊은이들의 희생이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통일의 밑거름이 됐으면 좋겠다.<이계성기자>이계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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