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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언제 제구실하나(이성춘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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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 언제 제구실하나(이성춘칼럼)

입력
1990.05.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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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개혁의 주도세력이 처음에는 대단한 열의와 정의감을 갖고 출발하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들이 부패하고 사명감을 상실하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불신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새 시대는 결단코 이와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5공화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공직사회의 부조리는 제거되어야 합니다.… 본인에게 조그만 소망이 있다면 후세의 사가들에 의해 성실하고 청렴한 대통령으로,그리고 정의사회구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대통령으로 기록되는 것입니다.…』(전두환 전대통령의 재임중 어록에서)암울했던 5공시절 국민들이 침묵하는 가운데 전두환정권은 입만 열면 모든 부정부패의 일소를 통한 정의로운 사회를 이룩하겠다고 호언했다. 그들은 5ㆍ18을 계기로 정치지도자와 각료 등을 연행,부정부패의 화신으로 낙인찍고 재산을 환수하면서 앞으로는 속임수와 탈법과 부패가 없는 정의로운 사회와 도덕국가를 건설할듯이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었다. 바로 20여년전 5ㆍ16후 군사정부의 식언과 시행착오와 거짓이 떠올랐던 것이다. 당시 군사정부는 구정치인들을 구악으로 규정했으며 특히 한실력자는 「천하에 몹쓸 반국가적인 병균」이라고까지 질타했었으나 얼마 안있어 구악들과 손을 잡고 정치를 펴나갔던 것이다.

어쨌든 전정권이 느닷없이 도덕과 청렴을 들고 나온 것은 뻔했다. 비정상적 방법에 의한 집권과 관련,국민의 반감과 저항을 희석시키려는 호도책이었으나 훗날 「엄청난 5공비리」로 끝내 국민을 기만,배신하고 말았다.

5공시절 국민을 우롱했던 희극적인 활동의 하나는 정부의 사정협의회의 운영이었다. 원래 동협의회는 구정권때부터 사정관계자들이 비공개리에 모여 공직풍토정화를 위한 계획등을 논의해 오던 것을 5공들어와 청와대 사정비서실이 주관,온갖 부정부패를 뿌리뽑는 최고의 본산임을 과시했다. 사정협의회가 설정한 1981년도 3대 사정목표는 거창하기만 했다.

즉 행정부조리 개선 및 청렴한 공직자도의 정립,정치 및 선거풍토의 쇄신을 통한 깨끗한 민주정치의 토착화,사회적비리ㆍ폐습의 퇴치에 의한 사회환경정화 및 국민정신개혁 등이 그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실천된다면 이땅에 부정과 비리는 티끌마저 없게 되어있으나 애시당초 지켜지지도 않을 화려한 구호의 잔치에 불과한 것이다. 그것뿐이랴. 그들은 전공무원의 청렴도를 측정하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택시합승 금지까지 내걸어 웃음거리가 됐었다. 세계 어느나라건 국민이 낸 세금과 위임한 권력을 공무원ㆍ공직자들이 올바로 사용하고 행사하는가를 감찰ㆍ감사하는 기구가 있다. 그러나 감사기구도 선ㆍ후진국에 따라 운영과 활동방식이 판이하게 다르다. 미국의 회계검사원(GAO) 영국의 감사원(EAD) 일본ㆍ서독ㆍ프랑스의 회계검사원 등은 평소 그런기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를정도로 조용하게 움직인다.

이들 기구들은 어떠한 권력과 압력으로부터도 독립되어 예산유ㆍ오용과 권력남용 등 공직자비리를 엄격하게 감시하고 있어 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공정ㆍ엄격하기로 이름높은 미국의 GAO는 매년 수천건의 감사결과를 국회의원들에게 제공하고 의원들은 이를 토대로 예산심의와 행정부견제 등 국회활동을 벌인다.

반면 후진국 개발도상국들의 감사기구는 거의가 정권의 시녀가 되어 본래의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부정과 비리를 외면하거나 설사 적발해도 정치적 처리에 맡긴다. 대신 집권자들은 깨끗한 정부를 애써 과시하기 위해 「암행감사」니 「특별감사」니 하며 이따금 법석을 떨지만 효과는 언제나 지극히 미미하기만 하다.

5공시절 우리의 감사원,공직사회의 양식과 파수꾼이 돼야할 감사원이 사정협의회니 사회정화위니하는 껍데기 사정소동으로 허수아비라는 소리를 들었고 숱한 5공비리하나 제대로 캐내지 못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얘기다.

6공들어 국민들은 이제야 감사원이 제기능을 다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민주화시대에 맞추어 김영준 신임원장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비리와 부정을 엄단하겠다』고 밝히지 않았는가.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감사원이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으로 비쳐졌다.

공직사회의 기강이 흔들리고 정부자금과 유관된 비리와 변칙이 빚어져도 선뜻 나서서 시원하게 쾌도를 휘둘렀다는 소리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우려했던 일이 그대로 터지고 말았다. 23개 재벌기업들의 비업무용부동산 취득에 대한 감사가 갑자기 중단됐다는 등의 이문옥 전감사관의 폭로는 국민을 아연케했다. 또 수십억원의 서울시 예산이 지난번 선거때 지원금으로 활용됐다는 내용등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물론 감사원이 재빨리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고 검찰도 진술내용이 무근이라며 수사를 종결했지만 국민들로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오히려 이같은 감사중단등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전감사관의 구속문제만해도 그렇다. 직무상 기밀누설을 이유로 들었지만 수천억원의 은행빚을 지고도 땅투기에 열을 올린 재벌들의 변칙행태가 과연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기밀이 되는지는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일부에서는 오늘의 엉거주춤한 감사원의 위상에 대해 대통령직속에 예속되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으나 말도 안되는 얘기다. 감사원법 2조에 엄연히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성과 중립성이 명기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5공때 감사원의 모든 임ㆍ직원이 비장한 각오아래 온갖 비리와 부정에 대해 그때그때 가차없이 적발하고 제동을 걸었었다면 전두환씨도 1년이상 백담사에서 고생시키지 않았을 것 아닌가.

기로에선 감사원은 이제 자세를 재정돈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민의 무관심과 불신에 아랑곳 없이 종래의 몸가짐을 지속할 것인지,아니면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은 물론 깨끗한 국정운영과 사회전반의 부정부패근절의 대들보내지 구심점이 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국민의 아낌과 전폭적인 지원속에 새출발할 수 있는 길은 분명하다.

어떠한 부정비리도 누구의 압력과 간섭없이 척결하며 감사내용과 조치결과는 국가기밀을 제외하고는 그대로 국민에게 그때그때 공개하는 일이다. 이는 요란한 말이 필요없다. 오지 성실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감사원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감사원을 감사해야 한다는 국민의 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야말로 국민에게 머리숙여 사과하고 새출발해야 한다.

국민은 감사원의 자성 자정 자구노력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볼 것이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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